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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4일 토요일

하차투리안 플루트 협주곡 /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 샤론 베잘리 / 안드레아스 델프스 / 서울시향

2010-03-25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Andreas Delfs
협연 : Sharon Bezaly, flute

Kabalevsky, Colas Breugnon Overture
Khachaturian, Flute Concerto
Sibelius, Symphony No. 2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지휘자 안드레아스 델프스는 디에고 마테우스에 이은 '대타' 지휘자였다. 미코 프랑크가 몸이 아파서 잇따라 연주회를 취소했다는데, 디에고 마테우스가 대신 지휘했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제법 아쉬웠다. 이날 프로그램에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코 프랑크는 핀란드 사람인데다 지난 2008년 3월에 가슴 뭉클한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을 들려준 일도 있어서 기대하고 있었으나, 대타로 나온 델프스는 호놀룰루 심포니 수석 지휘자라니 얄궂다. 오랫동안 밀워키 심포니 음악감독을 맡았다고는 하나 '하와이'라는 이름이 주는 햇볕 뜨거운 느낌이 도드라져서 시벨리우스와는 어딘가 안 맞을 듯하지 않은가!

지휘하는 품도 괄괄하고 서울시향이 내는 소리도 그다지 서늘하지 않았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뜻밖에 느리지 않은 템포에 제법 담백한 해석이었다. 그런데도 핀란드에서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이 그다지 또렷하게 느껴지지 않은 까닭은 교향곡 7번과는 달리 시벨리우스가 아직 핀란드 본색(?)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은 교향곡 2번인 까닭이었을까. 글쓴이는 지휘자가 실력을 제대로 내보이지 않고 소리를 건성으로 다듬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만하면 연주가 꽤 훌륭해서 한두 해 앞서 이런 연주를 들었다면 잘했다고 호들갑을 떨었을지도 모르지만, 서울시향이 그동안 놀랍게 발전한 만큼 이제는 이런 정도로는 만족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지휘자는 1악장 처음에 섬세하게 바뀌는 셈여림 기호를 꼼꼼하게 살리지도 못했고, 저음 현만으로 음형을 이어받는 대목에서 소리가 갑자기 줄어들기도 했다. 뒤이어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첫째 주제를 연주할 때에는 템포를 갑자기 조여서 '꿰맨 자국'을 드러냈다.

둘째 주제에 앞서 4분음 피치카토 음형을 되풀이하는 곳에서는 차츰 빠르고 세게 연주해야 하며, 이때 시벨리우스는 둘째 주제를 알리는 관악기 소리가 첫 박을 쉬던 관성과 부딪히며 속도감을 더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날은 관악기가 한 박자 쉬고 들어가 버렸고, 이것은 말할 나위 없이 지휘자가 일부러 악보 지시를 어긴 탓이다. 1악장을 소나타 형식으로 본다면 재현부에 해당하는 대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악장에서는 절정에 해당하는 곳에서 실수가 있었다. 관악기가 포르티시모―메조포르테―포르티시시모(fff)를 오르내리며 목 놓아 울부짖다가(마디 167) 모두쉼표를 만나 살짝 숨을 돌린 다음 마지막으로 한 차례 더 울부짖는 대목(마디 182)이었다. 이 숨 막히는 마디 182에서 지휘자가 예비박을 제대로 안 준 탓에 연주자들이 멈칫해 버렸고, 선율을 이끌어야 했던 트럼펫 연주자가 실수를 저지른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이날 트럼펫 수석 노릇을 했던 연주자는 지난해 12월에도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었던 객원이었는데, 누군가 싶어 물어봤더니 알렉상드르 바티(Alexander Baty) 라디오 프랑스 수석이란다. 이 사람은 한때 서울시향 트럼펫 수석을 맡았던 가레스 플라워스 못지않게 훌륭한 연주자로 어떻게든 시향에 눌러 앉혔으면 싶은 사람이다. 이날 때때로 지휘자 등과 손발이 안 맞아 제 솜씨를 못 내는 듯싶을 때도 있었으나, 4악장에서 들려준 금빛 눈부신 팡파르는 너무나 훌륭했다.

트럼펫 못지않게 멋졌던 악기는 오보에였다. 제임스 버튼 부수석이 3악장 둘째 주제를 비롯한 곳곳에서 멋진 오보에 독주를 들려주었으며, 2악장 절정에 뒤이어 모든 악기가 소리를 차츰 줄이는 가운데 오보에가 홀로 소리를 키우는 마디 218에서는 어둠을 뚫고 한 줄기 빛이 솟아나는 듯했다.

하차투리안 플루트 협주곡은 관악기 및 타악기가 떠들썩한 데다가 본디 바이올린 협주곡이어서, 자칫 독주 악기가 오케스트라 소리에 묻혀 버리기 쉽다. 아닌 게 아니라 이날 때때로 위태로운 곳이 있었으며 1악장 맨 앞에서 더욱 그랬다. 협연을 맡은 샤론 베잘리는 처음에 한 옥타브 높여 연주하다가 마디 15에 이르러 도로 한 옥타브 낮추었고, 바로 이때 오케스트라 소리가 플루트 독주를 거의 덮다시피 했으나 지휘자와 악단이 손발이 안 맞았는지 그다지 재빨리 소리를 거두어들이지 못했다.

샤론 베잘리지난 2008년 11월에 모차르트 D 장조 협주곡 K.314서울시향과 협연한 일이 있다. 그날은 수많은 표정을 연주에 담아내어 듣는 이를 깜짝 놀라게 하더니, 이날 하차투리안 플루트 협주곡에서는 무시무시한 테크닉을 뽐냈으며 바이올린이 내는 카랑카랑한 소리가 아닌 맑은 플루트 소리로도 곡에 담긴 팽팽한 긴장감을 그럴싸하게 살려냈다.

바이올린 더블스톱(double stop) 주법이 쓰인 곳을 빠른 음형으로 메우는 등 원곡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1악장 카덴차에서는 처음에 클라리넷과 선율을 주고받는 대목이 멋졌으며, 3악장에서는 플루트와 다른 목관 악기가 어지럽게 얽히는 마디 529에서 마치 숲 속에서 새들이 뾰로롱 뾰로롱 지저귀는 듯했다.

무엇보다 샤론 베잘리는 외모가 돋보였다. 금발에 깜찍한 얼굴이 어찌 보면 영화 《해리 포터》에 나오는 '헤르미온느' 에마 왓슨을 닮았다. 그렇게 보니 플루트는 요술 지팡이 같다. 아니, 요술피리인가?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2009.12.22. 라벨 피아노 협주곡 / 《스페인 랩소디》 /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 조성진 / 정명훈 / 서울시향

2009년 12월 22일(화)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 : 정명훈
협연 : 조성진

Ravel, Rapsodie espagnole
Ravel, Piano Concerto in G major
Berlioz, Symphonie Fantastique, Op.14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조성진은 지난 11월에 만 열다섯 나이로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천재다. 이 콩쿠르는 생긴지 얼마 안 되었으나 지난 우승자가 가브륄리크, 블레하치 등 매우 화려해서 이번 우승은 대단한 사건이다. 덕분에 많은 기대를 모은 이날 연주회에서 조성진은 앳된 얼굴과는 너무도 다른 훌륭한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들려주었다.

조성진이 천재인 까닭은 자연스러운 프레이징과 루바토, 세련된 셈여림 따위로 음악을 다스릴 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작품 구조와 흐름을 이해하고 음 하나하나가 그 흐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판단할 줄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테크닉만 앞세우면 기계처럼 딱딱해지게 마련이고,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루바토를 써 봐야 유치해질 뿐이다. 그러나 조성진은 음악에 끌려가지 않고 다스릴 줄 아는 경지에 벌써 올랐다. 그 '다스림'은 19세기 음악 패러다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했는데, 덕분에 이날 2악장이 참으로 멋졌다. 다만, 1·3악장에서는 좀 더 현대음악 느낌을 살렸으면 하는 욕심이 들 때도 더러 있었다. 음색을 제법 다채롭게 쓸 줄은 아는 듯했으니 오케스트라 협연 경험이 더 쌓이면 음색을 빚어내는 솜씨도 같이 늘어나리라 기대된다.

라벨 《스페인 랩소디》는 화려한 음향효과로 가득해서 지휘자가 소리를 얼마나 멋지게 다듬느냐와 오케스트라가 지휘자를 얼마나 따라가느냐가 중요한 곡이다. 이날 연주는 정명훈서울시향 이름에 걸맞게 참으로 멋졌다. 무엇보다 트럼펫 수석이 눈에 번쩍 띄었는데, '트럼펫' 하면 생각나는 금빛 눈부시게 번쩍이는 바로 그 소리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옛 수석이었던 가레스 플라워스가 떠난 자리가 제법 커 보이던 마당이라 이 연주자가 더욱 반가웠으며, 음색만큼은 플라워스보다 나은 듯해서 베를리오즈를 기대하게 했다.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은 영화에 빗대자면 B급 영화라 할 수 있다. 기괴한 4·5악장이 아니더라도 악보를 보면 음표 하나하나가 신경질을 부리는 듯한 느낌이 들며, 길고도 처절하게 궁상맞은 ― 차마 속된 말을 쓰지 못함을 양해 바란다 ― 3악장은 이어지는 악장을 헤아리게끔 한다. 이러한 'B급' 정서는 음반으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을 때가 잦은데, 정명훈은 바스티유 오페라와 함께 녹음한 음반에서 아예 불편한 정서를 싹 발라내고 세련된 음악으로 만들었으며 4·5악장은 사악한 느낌이 없으면서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화끈하다.

이날 서울시향 연주 또한 음반과 비슷했다.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첫 음을 살짝 늘여서 티 나지 않게 아첼레란도를 쓴 듯한 효과를 노렸으며, 첫 템포는 악보에서 지시한 ♩= 56보다 훨씬 느린 ♩= 36쯤으로 꿈처럼 어른어른한 느낌을 살렸다. 마디 17을 비롯해 이 곡에서 자주 나오는 지시어인 'animando'(생기있게)는 맥락을 보면 아첼레란도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명훈은 제대로 살리면 매우 신경질적인 이 지시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러우나 무디지 않은 템포 변화를 주었다. 2악장 마디 43 등에 나오는 기괴한 바이올린 글리산도는 포르타멘토처럼 살짝만 미끄러져서 세련된 분위기를 잃지 않았다. 3악장에서는 이 악장이 얼마나 사랑스럽게 들릴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맑고 잔잔한 프레이징이 돋보였다.

4·5악장에서는 코넷과 트럼펫 따위를 너무 앞세우지 않고 모든 성부가 또렷이 들리게끔 균형을 맞추었다. 음반을 들어보면 무엇보다 5악장 '마녀의 론도'(Ronde du Sabbat)에서 정명훈만큼 음 하나하나를 잘 살린 녹음도 없는 듯한데, 이날은 튜바 따위가 좀 더 힘을 내었으나 코넷·트럼펫과 균형이 제법 잘 맞으면서도 좀 더 화끈했다. 4악장 코넷·트럼펫 선율은 보통 음 하나하나를 끊어(마르카토) 연주하나 정명훈은 제법 부드러운 논 레가토(non legato)로 다스렸다. 그러나 큰북과 팀파니 등이 힘껏 두드려대어서 화끈함을 잃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음반과 뚜렷하게 다른 곳도 있었다. 이를테면 2악장에서 음반에서는 썼던 코넷을 이날은 쓰지 않았다. (2악장 코넷 성부는 베를리오즈가 나중에 자필 악보에 덧붙였으나 그냥 빼고 연주할 때가 잦다.) 1악장 마디 167에 있는 도돌이표 또한 음반과 달리 생략했다. 1악장 마디 198에서는 악보에 없는 아첼레란도를 썼는데, 이날은 음반처럼 가파르지 않고 아주 살짝만 빨라졌다.

라벨 《스페인 랩소디》에서 멋진 트럼펫 연주를 들려주었던 수석 연주자가 이번에는 코넷을 야무지게 연주했고,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은 장식음과 트릴로 가득해서 어렵기로 소문난 5악장 독주부를 음반과 거의 같은 빠른 템포로 나무랄 데 없이 연주했다. 3악장에서는 제임스 버튼이 연주한 잉글리시 호른과 이미성이 무대 밖에서 연주한 오보에가 마치 《라 트라비아타》 1막처럼 사랑스러운 선율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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