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현진이 누구인지 모른다. 기껏해야 한윤형씨 블로그 글을 읽고 '그런 사람이 있나 보다.' 수준으로 기억할 뿐이다. 이 블로그를 찾는 사람도 대부분 김현진을 모르리라 생각한다. 클래식 음악 얘기를 하는 이 블로그에서는 김현진 사태보다 ☞'크레디아 비리 의혹 사태'를 말해야 알맞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굳이 뒷북 글을 쓰는 까닭은 민노씨 글에 짧게 댓글을 달았다가 소통이 제대로 안 되고 민노씨 화만 돋워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민노씨 글에 다는 '댓글'이라 할 수 있다.
▶ 김현진 사건 정리
http://heeyo.egloos.com/1963001
http://heeyo.egloos.com/1963042
http://heeyo.egloos.com/1963052
☞ 민노씨.네 ― 〈추상적 진실과 구체적 진실 : 혹은 편들기와 정당화의 차이〉
▶ '드립'이라는 말
나는 '드립'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모른다. 한윤형씨 블로그에서 '―드립'이라는 말을 보고 재미있어서 뜻도 모르고 썼는데, 민노씨가 "조롱"과 "공격"으로 받아들이니 가치중립적인 뜻으로는 쓸 수 없는 말인가 보다. 생각해 보니 한윤형씨도 이 말을 좋은 뜻으로 쓴 일은 없었지 싶다.
따라서 내가 "'주성영' 드립"이라는 말을 쓴 일은 바르지 않다. 민노씨께 사과 올린다. (_._)
그런데 진짜 '드립'이 무슨 뜻인지, 어디서 왔는지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눈치가 대략 게임 용어에서 온 듯한데, 김원철은 겜맹이다. ㅡ,.ㅡa
▶ '공인'과 '유명인'
원래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다. 김현진을 '주성영'으로 바꿔치기하는 일은 잘못되었다.
이택광 논리를 쫓자면 국회의원 주성영이 술집 여사장에게 '행패'를 부린 건 '주성영'과 '술집 여사장' 사이의 개인적인 문제이니, 주성영 '개인'에 대한 도덕적 공격을 감행하는 것은 크게 동의하기 힘든 일이 된다.
주성영이 아니라 조갑제라면 나는 민노씨 주장에 동의할 수 있다. 조갑제는 ― 내가 잘못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 주성영과는 달리 공직에 있지 않아서 김현진과 바꿔칠 수 있으나 주성영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주성영은 공인이나 김현진과 조갑제는 공인이 아니다.
그러나 민노씨는 '공인'이라는 말을 '유명인'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는 듯하다. 나이브한 수준에서 연예인을 '공인' 운운하는 게 아니라 연예인을 공인으로 불러야 한다는 확신과 근거가 있다는 말이다. 민노씨 논리체계에서 연예인을 포함한 모든 유명인은 '공인'이며, 따라서 김현진을 주성영으로 바꿔쳐도 아무런 문제 없다.
나와 민노씨 사이에 의견이 갈리는 까닭은 '공인' 개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논의는 골치 아파진다. '공인'을 다루는 민노씨 주장이 제법 타당하기 때문이다.
▶ '공인'과 권력
공인이 일반인과 다른 수준의 비판을 감당해야 하는 까닭은 그들이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인'을 어찌 정의할지는 '권력'을 어찌 정의할지와 같은 문제가 된다. 김현진은 권력이 있는가? 조갑제는 권력이 있는가? 나는 김현진과 조갑제가 가진 '언론권력'이 진짜 권력이 아닌 유사권력으로 책임 영역과 수준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택광 인용으로 대신하겠다.
87년 이후 한국으로 유입된 '시민사회론'의 영향 때문인지, 한국에서 '공적인 것'이라는 개념은 대체로 하버마스의 뉘앙스를 많이 풍긴다. 그래서 항상 한국에서 중요한 것은 '공공적 합의'라는 말이지만, 도대체 이게 한국사회에서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성찰은 없다. (…) 연예인이나 명사를 '공인'이라고 부르고 이들에게 일반인보다 더 강한 도덕성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속류화한 하버마스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애먼 하버마스가 엉뚱한 곳에 와서 고생한다는 느낌이다. 나는 이런 결과의 책임을 가라타니 고진처럼 하버마스의 이론 자체에 내재한 결함에서 찾을 생각은 없다. 하버마스를 면밀하게 읽어보면, 그가 말하는 의사소통의 공간이라는 건 '이상적인 것'이지 결코 실현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택광이 정의하는 '공인'과 내가 정의하는 '공인'이 일치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택광은 칸트 얘기를 하고 있는데 나는 그 얘기가 알쏭달쏭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택광은 김현진 같은 이를 '작가'라 부르며 '유사권력의 책임 영역'에 뚜렷한 선을 그었으므로 김현진과 관련해서는 내 생각과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지금 일부 진지한 이들조차도 인터넷상에서 특정 개인에 대해 가하는 다구리를 '공공적 합의'라고 착각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래서 내가 칸트를 끌고 들어온 것이다. 칸트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라는 영역 내에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하는지 아니면 사적으로 사용하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김현진이 작가로서 하는 행동과 실제로 드러난 행동이 달랐다는 사실을 다구리의 정당성으로 들이미는 이들이 있지만, 이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칸트의 정의에 따르면, '작가'는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현실에서 공무원이거나 정치가이거나 회사원이거나 하는 문제를 넘어선다. 작가로서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상정하고 글을 쓰는 순간 그는 공적으로 이성을 사용하는 것이다. 칸트의 말대로 자신의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항상 자유로운 행위이다. 말하자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누구나 그것을 출판해서 독자들에게 내놓을 수 있다. 이런 사용은 제한 받지 않는다.
▶ 민노씨의 논점 일탈
나는 이번 사건을 글 제목에 쓴 바와 같이 "김현진 사생활 폭로 및 다구리 사태"로 이해한다. 2PM 재범 사건에서 "Korea is gay" '드립'보다 네티즌의 다구리와 그 바탕에 숨은 대중의 비틀린 욕망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김현진 사건에서 김현진이 저지른 죄보다는 대중의 다구리와 비틀린 욕망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택광은 김현진 사건과 2PM 사건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그 '비틀린 욕망'을 분석했고, 한윤형은 여기서 더 나아가 섹스·연애 칼럼리스트 및 워너비들이 블로그로 '유사권력'을 쌓는 방식이 이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김현진을 공격했다는 그 '자매'들이 이번에는 한윤형을 공격했다. 공격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쓴 '무기'가 논리가 아닌 사생활 폭로라는 비겁한 짓거리라는 대목이 문제다. 민노씨는 이것을 단순히 "과도한 비판과 비난"이라 했으니 내가 보기에는 논점 일탈이다. 내가 민노씨 글에서 댓글로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나는 남을 뒤에서 헐뜯는 말을 몹시 싫어한다. 자세한 내용은 ☞ 〈남 뒤에서 헐뜯기〉로 대신하겠다. 그러나 뒤에서 좀 헐뜯어도 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공인'이다. 나는 김현진이 '공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김현진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짓거리가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이택광은 하버마스와 칸트까지 불러내서 바로 이 얘기를 했고, 또 김현진의 허물을 이유로 '작가 김현진'을 사회적 교수형에 처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민노씨 주장과는 달리 '신세대 에세이스트'라는 아이콘은 이택광이 보호하고자 한 가치의 본질이 아니다.
▶ 다시 '공인'과 '유명인'
나는 처음에 민노씨가 한윤형 글을 읽지 않아서 사건 맥락을 제대로 파악 못하지 않았나 의심했다. 그러나 댓글로 한윤형 글을 읽었음을 알았으니, 결국 의견이 갈리는 근본 원인은 '공인'을 서로 다르게 정의하고 있다는 데에 있는 듯하다.
이거 참 결론 안 나는 문제다. 그래서 민노씨가 '김현진'을 '주성영'으로 바꿔친 방식을 흉내 내어 이번에는 '2PM 재범'으로 바꿔친 다음 민노씨 글을 요약해 봤다. 민노씨를 비꼬려는 뜻은 없으나 '공인'에 대한 내 주장을 확인시키고 민노씨 논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에는 적절하리라 본다.
▶ '김현진'을 '주성영'으로, 다시 '2PM 재범'으로
2PM 재범은 "Korea is gay"라는 말로 한국을 폄하했다. 민노씨 주장을 좇자면 재범이 어떤 맥락에서 이 말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유명인에게 주로 문제가 되는 건 '추상적인 진실'이다. "폄하" 그 자체가 문제 된다. 왜 폄하했대? 무슨 상황이었대? 언제 어디에서 폄하했대? 무슨 말로 폄하했대? 이런 걸 관심 있어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일단 '폄하했다'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민노씨는 ☞ 〈소셜미디어와 대한민국 : 소통과 다양성이라는 환상〉이라는 글에서 또 이렇게 말했다.
리승환이 지적하는 것처럼 "한국은 좆같은 나라"이기도 한데, 그 맥락은 거세되고, 고민할만한 가능성,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증발한 채로, 그 불경한 목소리만 거룩하기 짝이 없는 대한민국, 그 고결한 시장의 법칙에 의해 '일망타진'된다.
그러니까 민노씨 글은 '추상적인 진실'을 무시하고 '구체적인 진실'과 그 맥락에 매달리는 오류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걸 쉬운 말로 '편들기'라고 한다.
▶ 김현진과 2PM 재범
이 글은 민노씨 보라고 쓴 글이다. 그러나 이 블로그를 찾는 사람은 다양하므로 독해력 떨어지는 누군가가 내 글을 오해할까 걱정되어 굳이 이택광 글을 또 인용한다. 요 밑에 쓴 글에서 밝힌 바 있듯이 김원철은 이택광'빠'다.
진보라는 이념이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위해 그 진보의 담론이 동원된다는 사실을 이번 사태는 잘 보여준다. 김현진 해프닝은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2PM의 박재범을 쫓아낸 그 멘털리티가 다른 얼굴로 나타난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