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국제음악재단 매거진에 '김원철의 박신(剝身) 클래식 ― 클래식 까주는 남자' 시리즈로 연재하는 글로 올 봄에 썼던 1편입니다. 급하게 쓰느라 자기표절이 좀 있지만… ^^;
한시(漢詩)에서는 '기승전결'을 말하고, 소설 등에서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구조를 말합니다. 음악도 비슷해요. 서양 조성음악에서는 화성 진행의 근본 원리로 '긴장과 이완'을 말합니다. 불협화음은 긴장을 낳고 협화음은 이완을 낳으며, 불협화음을 '예비'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조성음악의 뼈대를 이루지요.
〈학교 종〉을 계명창으로 불러봅니다. 솔솔라라솔솔미 솔솔미미레 솔솔라라솔솔미 솔미레미도. 선율을 이루는 음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도레미솔라. 다섯 음으로만 되어 있지요. 그리고 그 다섯 음은 모두 피아노 흰 건반에 들어맞아요. '솔'이 열한 번 나오고 '미'가 여섯 번, '라'가 네 번, '레'가 두 번 나오지요. '도'는 딱 한 번 나오지만 맨 마지막에 나와서 곡을 끝맺으므로 알고 보면 매우 중요합니다.
이 곡은 C 장조로 되어 있어요. 다시 말해 C 음, 즉 '도'를 '으뜸음'으로 하는 음계인 '도레미파솔라시'로 선율이 이루어져 있지요. 이 곡에 가장 자주 나온 '솔'은 C 장조에서 '딸림음'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도미넌트(dominant)예요. 말 그대로 선율을 다스리는 음이지요. 딸림음(도미넌트)이 잡고 있는 질서가 끝내 으뜸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조성음악의 긴장과 이완을 낳는 핵심입니다.
이처럼 선율을 이루는 음들이 맺는 위계질서를 우리는 '조성(調性; tonality)'이라 부릅니다. 이 위계질서가 잘 잡힌 선율일수록 듣기에 편안하지만, 또 그만큼 단순하기도 합니다. 단순한 선율은 그만큼 지루해지기 쉽고, 적절한 일탈은 선율을 더욱 넉넉하고 재미있게 만들지요.
그래서 서양음악은 조성 체계가 확립된 뒤로 '더 많은 긴장'을 음악에 담아내는 방향으로 변화했습니다. 모차르트보다 베토벤이, 베토벤보다 바그너 음악이 더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어요. 그리고 '일탈'이 넘쳐나 마침내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모든 음이 평등해진 음악이 나타나지요. 이것을 우리는 '무조 음악' 또는 '12음 음악'이라 부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조성음악이 계몽주의 사상과 닿아 있다면 무조음악은 모더니즘과 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윤이상 음악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닿아 있어요. 또 이번 통영국제음악제에서 공연될 음악극 《죽음의 꽃》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 새로운 지향점을 모색하는 우리 세대의 시대정신과 닿아 있습니다.
작곡가 살바토레 샤리노가 《죽음의 꽃》을 쓰면서 제수알도의 삶과 음악을 모티프로 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조성체계가 확립되기 전인 16세기 말에 활동하면서 시대를 너무나 앞서 간 파격적 불협화음과 과감한 선율을 사용한 작곡가가 바로 제수알도이거든요. 16세기 작곡가와 21세기 작곡가가 시대를 뛰어넘어 공명하는 현장을 공연장에서 직접 느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