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7일 수요일

윤이상: 노래 (1964)

"‹노래›(Nore)는 판소리 그 자체이다. 노래를 뜻하는 서양 음악의 제목들이 많음에도 윤이상이 일부러 '노래'라고 지은 이유는 첼로가 외국인처럼 '싱'(sing)을 하는 게 아니라 한국인처럼 노래하기를 원해서일 거라 추측해본다. 중간중간에 공간을 채워주는 피아노는 마치 고수의 추임새와 같다." (첼리스트 고봉인)

서양음악에서 개별음은 고정되어 있어 다른 음과 관계를 맺으면서 음악적 의미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동아시아 음악에서는 개별음이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며 소우주를 형성한다. 윤이상은 이것을 붓글씨와 펜글씨의 차이에 빗대어 설명하기도 했고, 또 도교적인 관점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동양에서는 사람이 혼자서 음악을 만들지 않으며, 음향이 이미 그곳에 먼저 존재합니다. […] 그러므로 동양 사람들이 말해오기를, 음악이란 작곡하는 것이 아니고 낳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주에 작은 부분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윤이상이 주목한 동아시아적인 아이디어를 서양음악 어법으로 옮기려면 수많은 장식음과 트릴, 글리산도, 속도가 변하는 비브라토, 셈여림의 복잡한 변화 등이 필요하게 된다. 윤이상 음악에서 음들이 살아 움직이는 '양식'은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더 한국적인 울림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변화했는데, ‹노래›는 비슷한 시기의 다른 작품과 달리 후기 양식을 예견케 하는 점이 특이하다.

윤이상은 1964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서독 방문을 기념하여 한국인 음악가들이 준비한 환영음악회를 위해, 어떤 첼로 전공 유학생의 부탁으로 ‹노래›를 작곡했다. 그러나 작품이 요구하는 고난도 테크닉을 연주자가 짧은 시간에 감당할 수 없어 이 곡의 연주는 취소되었다. 얄궂게도 윤이상은 3년 뒤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간첩 혐의로 납치되어 한국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동안 윤이상의 베를린 자택에서 악보가 발견되어 1968년에 출판 및 초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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