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은 전체를 담고, 전체는 모든 부분에 자신을 현상한다.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의 말이지만 동아시아인에게 익숙한 말이기도 하다. 동아시아 음악에서 개별음은 생명력을 품고 자유롭게 움직인다. 음 하나만으로도 소우주를 형성한다. 소우주가 모여 대우주를 형성하고, 대우주는 소우주 속에 있다.
윤이상 음악에서 개별음과 그것이 모여 만들어 내는 음향복합체의 관계도 이와 같다. ‹예악›으로 대표되는 관현악곡이 한 줄기로 흐르는 거대한 음향 흐름을 보여준다면, 윤이상의 독주곡은 음 하나가 생동하며 형성하는 소우주를 보여준다. 그리고 윤이상의 현악사중주곡은 '대우주'와 '소우주'를 두루 살피기에 적당하다.
윤이상은 음악으로 도(道)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고, 이 작품에도 일종의 '해탈'의 순간이 160째 마디에 나타난다. 그런데 '해탈'에 이르기까지 겪는 '번뇌'는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으며, 첼로 협주곡과 같은 처절함은 이 곡에 나타나지 않는다. 모든 갈등은 지상의 것이 아닌 천상의 것처럼 느껴지고, 마치 액체가 기체로 상전이(相轉移)하듯 해탈에 이른다. 이어지는 음악은 마치 영산회상(靈山會相) 중 상령산(上靈山)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