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3일 목요일

슈베르트 피아노 5중주 A장조 '송어'

한산신문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



맑은 시냇물에, 즐거이 흐르는 물에
성급한 송어가 쏜살같이 지나가네.
나 물가에 서서 가만히 지켜보네
즐거운 물고기 멱 감는 깨끗한 시냇물.

― 가곡 송어(Die Forelle) 중에서. C. F. D. 슈바르트 작시(作詩)

슈베르트는 피서를 겸한 연주여행을 갔다가 돈 많은 음악 애호가이자 아마추어 첼리스트였던 질베스터 파움가르트너에게 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파움가르트너는 슈베르트의 유명한 가곡 《송어》(Die Forelle) 선율을 따서 피아노 5중주곡을 써달라는 부탁을 했고, 그에 따라 슈베르트가 이 곡을 쓰게 되었습니다.

슈베르트는 이 곡을 아마추어인 파움가르트너와 친구들이 연주할 수 있게끔 비교적 쉽게 썼습니다. 다섯 악장으로 된 이 작품은 자세한 설명 없이 편하게 들을 수 있을 만큼 짜임새가 느슨하기도 합니다. 《송어》 선율은 4악장에 나오는데, 누구나 들으면 알 만큼 유명한 선율이지요.

이 유명한 선율을 더블베이스와 첼로가 함께 연주하는 대목은 오디오의 저음을 테스트하기에 좋다고도 알려졌습니다. 더블베이스 음이 잘 들리지 않을 때가 있어서 중간에 선율이 살짝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들지는 않는지, 심지어 베이스 소리가 첼로나 비올라 소리처럼 들리지는 않는지를 들어보면 그 오디오가 얼마나 저음을 충실하게 재현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저가형 제품이라도 오디오 관련 지식이 있는 사람이 잘 설치하기만 하면 더블베이스로 연주하는 거의 모든 음이 잘 들리더군요. 그리고 단순히 음이 들리는 수준을 넘어서 연주자가 어떤 연주법을 사용하는지를 세밀하게 들려줄수록 고급 오디오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언젠가 들어본 최고급 오디오로는 연주자의 표정까지 눈에 보일 듯하더군요.

일반적인 피아노 5중주가 현악사중주, 그러니까 제1 바이올린, 제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편성에 피아노를 얹은 것과 달리 이 작품은 바이올린은 1대만 쓰고 대신 더블베이스를 사용한 것이 특이합니다. 이것이 음악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려면 서양음악의 화성에 관해 조금은 알아야 합니다.

서양음악은 본디 성악이 중심이었지요. 그래서 기악이 성악을 앞지른 뒤에도 성악에서 쓰던 이론과 용어를 기악에 그대로 쓰곤 합니다. 화성 이론에서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이렇게 네 가지 성부(聲部; voice)를 기본으로 합니다. 그리고 이런 4성부 체계가 성악뿐 아니라 기악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현악기 가운데 소프라노 역할은 제1 바이올린이에요. 제2 바이올린이 알토, 비올라가 테너, 첼로가 베이스 역할이지요. 더블베이스가 왜 빠졌느냐고요? 더블베이스는 베이스 성부를 '더블링'(doubling)하는 악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베이스 성부를 맡는 첼로보다 한 옥타브 아래에서 첼로와 같은 선율을 연주해요.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다른 선율을 연주할 때도 있다고요? 옛날에는 안 그랬다가 '독립'한 거예요. 더블베이스를 '독립'시킨 작곡가는 베토벤입니다.

이 작품은 팔딱거리는 송어가 눈에 보일 듯한 선율과 리듬, 그리고 맑은 시냇물과 싱그러운 공기가 느껴질 듯 투명하게 반짝이는 화음과 음색이 매력적인 걸작입니다. 언젠가 제 동료가 이 곡을 들으면서 한 농담이 핵심을 찌른 말이더군요. "나, 왜 이렇게 침이 고이지?"

그런데 '송어'라는 제목은 최근까지 일부 교과서에서 '숭어'로 잘못 쓰여 왔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잘못 번역한 것이 이어지다가 2010년에 와서야 이것을 바로잡은 모양이네요. 숭어는 바닷고기이고, 송어는 민물고기이지요. 그리고 가곡 《송어》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맑은 시냇물에(In einem Bächlein helle)…"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인 북독일방송교향악단(NDR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들로 이루어진 파베르제 퀸텟(fabergé quintet)이 오는 11월 15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슈베르트의 '송어' 5중주를 연주합니다. 앗! 생각해 보니까 통영국제음악당은 송어가 사는 시내가 아닌 '숭어'가 사는 바닷가에 있네요. 얄궂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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