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3일 목요일

작품 설명: 베르디 《운명의 힘》 서곡,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림스키-코르사코프 《세헤라자데》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 팸플릿과 웹매거진에 실은 글입니다.

☞ 원문 링크 : http://g-phil.kr/?p=1507

▶ 베르디 《운명의 힘》 서곡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은 서곡이 가장 유명하지요. 이 글에서는 음악에 관해 자세히 얘기하기보다 줄거리를 알려드릴 테니 상상하면서 들어 보세요.

레오노라는 잉카 제국 왕족인 돈 알바로와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레오노라의 아버지인 칼라트라바 후작이 그것을 반대합니다. 레오노라는 망설인 끝에 알바로를 따라 몰래 도망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칼라트라바 후작이 칼을 들고 막아서고, 알바로는 총기 오발로 후작을 죽이게 됩니다. 두 사람은 따로 갈라져 도망칩니다.

레오노라의 오빠인 돈 카를로가 두 사람을 추적합니다. 레오노라는 알바로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먼 친척인 수도원장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고 수도원 근처에 있는 작은 동굴에서 홀로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알바로는 레오노라가 죽었으리라 생각하고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기를 바랍니다. 카를로가 전쟁터에서 알바로를 만나고, 두 사람은 서로 알아보지 못한 채 영원한 우정을 맹세합니다.

알바로는 부상을 당해 후송됩니다. 알바로는 카를로에게 비밀 상자를 건네며 열지 말고 태워 달라 부탁하지만, 카를로는 상자를 열어 알바로의 정체를 알고 복수를 다짐합니다. 알바로가 완쾌된 뒤 카를로가 결투를 신청했다가 무산되는 과정에서 알바로는 레오노라가 살아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알바로는 불행한 운명을 한탄하고 수도사가 되어 '라파엘'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갑니다. 카를로는 알바로를 찾아내고 결투를 벌인 끝에 중상을 입습니다. 카를로는 죽기 전 종부성사를 간청하고, 알바로는 가까운 동굴에 사는 수녀를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레오노라를 만납니다. 카를로는 레오노라를 칼로 찌른 뒤 죽고, 레오노라는 카를로를 용서한 뒤 죽습니다. 수도원장이 달려와 세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판본에 따라 알바로가 자살하기도 합니다.)

▶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딱히 표제가 없는 작품이므로, 음악 외적인 설명을 늘어놓는 대신에 조금 딱딱하더라도 악곡의 짜임새를 설명하겠습니다. 이른바 '소나타 형식'에 관해서는 많이들 아시겠지만, 모르시는 분을 위해 간략하게나마 설명할게요.

소나타 형식은 크게 보아 제시부―발전부―재현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시부는 제1 주제, 그와 대비되는 제2 주제, 그리고 경과구 따위로 이루어져 있고, 발전부는 제시부 주제가 자유롭게 '발전'하는 곳입니다. 재현부는 제시부를 그대로 또는 비슷하게 되새기는 곳이고요. 때로는 앞뒤로 서주(intro)와 종결부(Coda)가 덧붙을 수도 있습니다. 소나타 형식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라지만, 여기서 복잡한 얘기는 더 하지 않겠습니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은 변형된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지요. 제1 주제는 길고 어둡고 화려하지만 으스스한 바이올린 독주가 이끌고, 오케스트라는 때로 거드는 식입니다. 목가적인 제2 주제는 첼로와 바순으로 시작하고 클라리넷, 오보에, 플루트와 바이올린이 선율을 받아 뒤따릅니다. 그리고 독주 바이올린이 제2 주제를 애달프게 울부짖는 느낌으로 고쳐 연주합니다. 오케스트라가 다시금 선율을 이끄는 대목은 '작은 종결부'(codetta), 또는 관점에 따라 제3 주제라 할 수 있습니다.

▲ 1악장 제2주제

▲ 1악장 제2주제의 변형(독주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악장이 끝나기 직전에 협연자가 홀로 화려하게 연주하는 대목을 카덴차(cadenza)라고 하지요.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제1 주제에서 제2 주제로 넘어가기 직전에 카덴차를 닮은 빠르고 화려한 음형이 나오고, 1악장 발전부가 통째로 카덴차를 대신합니다.

발전부가 끝나면, 제시부가 변형된 재현부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짧은 종결구(Coda)와 함께 1악장이 끝납니다.

짜임새가 복잡한 것은 1악장까지입니다. 2악장은 A-B-C 세 도막으로 되어 있지만, 이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음악을 들으면서 저마다 슬픈 기억을 하나씩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서럽게 울부짖는 바이올린 소리와 함께 쓰라린 마음을 그러모았다가 쓸쓸한 선율 속에 떠내려 보내세요.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3악장은 A-B-A'-B'-종결구 꼴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빠른 음형으로 쉼 없이 달리는 짜임새입니다. 듣기 좋은 선율과 다채로운 음색, 북유럽의 자연을 연상시키는 서늘한 공기, 그 공기를 뚫고 쏟아지는 밝은 햇빛처럼 화려한 독주 바이올린이 멋진 악장입니다. 협연자가 기교를 마음껏 뽐내는 모습이 더욱 멋지지요.

▶ 세헤라자데, 셰에라자드, 샤흐르자드

《세헤라자데》는 『천일야화』에 나오는 왕비 칭호를 가리키는 제목입니다. 원작 『천일야화』는 페르시아어이고, 프랑스 작가 앙투안 갈랑이 프랑스어로 옮겨서 유럽에 알려졌으며, 영국 작가 리처드 프랜시스 버튼이 옮긴 영어판이 가장 유명합니다. 판본이 복잡한 만큼 표기법도 복잡해요.

『천일야화』에 나오는, 페르시아 왕비를 부르는 이름은 본디 샤흐르자드(شهرزاد‎)입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에서는 페르시아어 한글 표기법을 아직 정하지 않았고, 『천일야화』 관련 표기는 프랑스어를 기준으로 할 것을 권장합니다. 그래서 셰에라자드(Shéhérazade)가 되지요.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러시아 작곡가이므로 러시아어 표기까지 참고하자면 셰헤레자다(Шехерезада)가 됩니다.

그러나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세헤라자데'라 쓰기로 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표기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다른 이름은 페르시아어를 기준으로 쓸게요. 이를테면 왕은 '샤흐르야르'입니다. 또 《세헤라자데》 악장마다 붙은 표제에도 페르시아어를 바탕으로 '신드바드'와 '칼란다르' 등으로 썼습니다.

▶ 림스키-코르사코프 《세헤라자데》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교향적 모음곡 《세헤라자데》는 각 악장이 『천일야화』의 특정 에피소드를 묘사한 곡은 아닙니다. 다만, 작곡가가 나중에 다음과 같은 표제를 덧붙였다고 하지요.

1. 바다와 신드바드의 배

2. 칼란다르 왕자

3. 왕자님과 공주님

4. 바그다드의 축제. 바다. 청동 기병으로 둘러싸인 절벽에서 배가 난파함

작곡가가 자서전에 쓴 설명에 따르면, 《세헤라자데》 1악장 처음에 나오는 짧고 묵직한 음형은 샤흐르야르, 그러니까 왕을 뜻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나오는 바이올린 독주가 '세헤라자데'를 뜻하지요. '세헤라자데' 음형은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조금씩 달라진 모습으로 계속 나오니까 잘 기억해 두세요.

뒤이어서 첼로가 같은 음형을 고집스럽게 되풀이하기 시작합니다. 비올라가 때때로 거듭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느낌이 '파도'를 닮았지요. 바이올린이 그 위에서 '샤흐르야르' 음형을 살짝 고친 '바다' 음형을 연주합니다.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 샤흐르야르의 사나운 성격은 거친 바다의 이미지와 겹치지요. 바다는 때로 거칠고, 때로 잔잔합니다.

2악장 '칼란다르 왕자'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헤라자데는 더 화려하고, 어찌 들으면 요염합니다. '칼란다르'는 종교지도자에게 붙이는 칭호인데, 2악장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칼란다르도 신드바드처럼 배를 타고 있는 듯해요. 햇볕 따사로운 나른한 오후에 갑판에서 무언가 흥미진진한 '사건'이 일어나는 모습이 떠오르거든요.

3악장 '왕자님과 공주님'은 달콤한 사랑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제까지와 달리 음악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세헤라자데' 바이올린 독주가 나옵니다. 펼침화음으로 마치 협주곡의 카덴차처럼 화려한 음형을 연주하더니 오케스트라의 사랑 노래를 이끌어 버리지요. 마치 '왕자님과 공주님'은 다름 아닌 '샤흐르야르와 세헤라자데'라고 속삭이는 듯합니다! '세헤라자데'를 달리 쓰면 '샤흐르자드'라 했지요. '샤흐르야르와 샤흐르자드'는 '아사달과 아사녀' 또는 '갑돌이와 갑순이'처럼 사랑 노래가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4악장에서는 살타렐로(Saltarello), 타란텔라(tarantella) 등 빠른 춤곡 리듬으로 마구 달리는 가운데 앞선 악장에서 나온 음형들이 이 리듬과 엇갈리고 뒤섞입니다. 살타렐로와 타란텔라는 거의 비슷하므로 이 글에서 머리 아프게 차이를 설명하지는 않을게요. 둘 다 이탈리아 춤곡 양식이라는 대목이 얄궂은데요, 생각해 보면 아라비아 사람들이 춤추고 놀 때 무슨 음악을 듣는지 머릿속에 얼른 떠오르나요? 설마 '뚫흙 뚫흙 뚫 따다다?'

신 나는 축제 분위기는 '바다' 음형을 만나고 배가 난파하면서 파국을 맞습니다. 바다가 잔잔해지면 '세헤라자데'(바이올린)와 '서툴게 다정해진 샤흐르야르'(첼로 및 더블베이스)가 여운을 주는 대화를 나누면서 음악이 끝납니다.

세헤라자데는 어떤 사람일까요? 무서운 임금님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여장부? 임금님을 유혹하는 요녀? 마음 깊은 곳 상처를 달래는 어머니? 경기필 정하나 악장님이 바이올린으로 들려주는 세헤라자데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세요!

※ 티켓 예매 바로가기 :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GoodsCode=1300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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