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에 연재중인 글입니다.
원문: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677196
지난 시간에 지휘자의 역할 가운데 작품 해석에 대해 말씀드렸지요. 누구나 아는 곡을 예로 들다 보니 시대적 특성을 헤아리는 얘기가 많았지만, 현대 곡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테면 지휘자는 작품의 어느 대목에 어떤 음색이 가장 알맞은지를 '해석'하고 그것을 연주자에게 알려 줘야 합니다. 이를테면 현악기가 어느 대목에서 비브라토를 얼마만큼 쓸지, 활을 지판 가까이에서 긁을지 멀리서 긁을지, 얼마만한 힘과 얼마만한 빠르기로 긁을지, 음표마다 활 방향은 어떻게 할지 등이요. 구체적인 연주법은 악장이나 수석단원이 결정하기도 하지만, 지휘자가 특정 연주법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현대곡이라면 작곡가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겠고요.
지휘자 없이 공연하는 악단도 있어요. 악단 규모가 작고 지휘자의 역할이 애초에 크게 필요하지 않은 작품만 연주한다면 지휘자가 없어도 됩니다. 다만, 그럴 때에도 악장이나 다른 누군가가 지휘자 역할을 대신해야 합니다. 지휘봉만 안 들었을 뿐이죠. 사실, 오늘날과 같은 전문 지휘자가 나타난 때는 19세기입니다. 그래서, 이를테면 18세기 작품인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은 협연자가 지휘자를 겸할 때가 잦아요.
특수한 사례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마음에 안 들면 단원들이 지휘자를 따돌리고 '지휘자가 지시한 것보다 더 아름답게' 연주해 버리기로 유명합니다. 전통과 실력이 있는 악단일수록 지휘자 말을 안 듣고 연주자 자신의 해석을 지휘자에게 가르치려 들기도 한다지요.
그런데 그 콧대 높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을 잔뜩 긴장하게 만드는 지휘자도 있더라고요. 20세기 관현악곡을 연주하는데, 트럼펫 연주자 하나가 틀린 음을 연주했어요. 그런데 틀린 대목에서 트럼펫 네 대가 독립적인 선율을 연주합니다. 결정적으로 무조음악이고, 다른 악기까지 더하면 무시무시한 음표의 카오스 상태이지요. 그런데 지휘자는 두 번만에 '범인'을 잡아냅니다! 살아남은(?) 단원들이 가슴을 쓸어내려요. 그 지휘자는 피에르 불레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