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에 연재중인 글입니다.
원문: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675779
이제까지 지휘자의 박자 젓기에 관해서 기술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말씀드렸는데요,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악보라는 '텍스트'를 음악이 될 수 있도록 '해석'하고 그것을 연주자들에게 알리고 설득하는 일입니다. 작품 해석이 훌륭해야 할 뿐 아니라 오케스트라라는 조직의 으뜸으로서 이른바 '리더십'을 보여야 하지요. 지휘자를 '마에스트로'(Maestro)라고 부르며 존경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작품 해석 얘기를 자세히 해볼게요. 작곡가의 의도를 가장 잘 살린 연주가 가장 훌륭한 연주라는 명제가 참이라면, 작곡가의 진정한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요? 작곡가의 마음 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다음에야 알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작품이 이미 발표된 이상 작곡가의 의도가 절대적이라 하기도 어렵습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라고도 했지요. 작품이라는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하고, 그 해석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지휘자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 도입부를 예로 들자면, '공포의 팡파르'라고 불리는 이 대목은 사실 악보대로라면 주선율을 목관악기가 연주하고 트럼펫 등은 단순한 음형으로 뒤를 받쳐 주는 역할을 할 뿐이에요. 그런데 이 곡이 초연될 당시에 쓰이던 트럼펫으로는 낼 수 없던 음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오늘날에는 트럼펫에 주선율을 맡기는 것이 진정한 베토벤의 의도라고 '해석'할 수 있지요. 이왕이면 트럼펫의 강력한 음량에 맞게 악기 편성을 악보 지시보다 '뻥튀기'해 주고요.
몇십 년 전부터 좀 다른 해석이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악보에 있는 음표 그대로, 악보에 있는 편성 그대로 연주하자고요. 더 나아가 작품이 발표될 당시 악기로 연주하고 악기 조율법까지 그때 관습대로 하며, 악보에 나오는 작은 나타냄말까지 당시 관습과 작곡가의 버릇 등까지 고려해 '해석'하고자 하면 본격적인 학술 연구가 됩니다. 지휘자는 그 성과를 어디까지 받아들일지를 결정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