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그리고 모두 연결되어 있다. 악장 사이에 멈춰서는 안 된다. 휴식도 조율도 안 된다. 베토벤은 아타카(attacca)로, 멈춤 없이 연주하라고 강조했다. […] 우리에게, 이 말은 그토록 긴 시간을 멈추지 않고 연주하는 동안 악기마다 조율이 제각각으로 틀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멈출까? 아니면 조율이 어긋날지라도 마지막까지 서로 맞추려고 계속 애쓸까?"
영화 《마지막 사중주》(A Late Quartet)에서 첼리스트가 하는 대사이지요. 베토벤 후기 걸작 중 하나인 현악사중주 14번 Op. 131을 연주하려면 악장 사이에 쉼 없이 이어서 연주해야 하는데, 이때 연주자가 고민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동시에 등장인물 사이에 일어날 갈등을 암시하는 의미심장한 대사입니다.
음악가로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제1 바이올린, 제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음악적 대화로 연결되는, 그러나 클래식 음악에 관해 별다른 지식이 없어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자자했던 탁월한 음악 영화이지요. 아직 안 보셨다면 꼭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줄리아드 스트링 콰르텟은 어찌 보면 이 영화에 나오는 '퓨그'(Fugue; 푸가) 콰르텟과 닮은꼴입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 정상급 현악사중주단이기도 하고, 올해로 창단 70주년을 맞았으며(영화에서는 25주년), 무엇보다 첼리스트 조엘 크로스닉이 이번에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순회공연을 할 예정이지요. 올 9월부터 활동하는 새 첼리스트가 여성이라는 점도 영화와 비슷합니다.
다만, 영화와 달리 조엘 크로스닉이 파킨슨 씨 병을 앓고 있지는 않아요. 또 줄리아드 스트링 콰르텟은 퓨그 콰르텟과 달리 단원들의 세대교체를 여러 차례 겪으면서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조엘 크로스닉은 줄리아드 콰르텟의 제3대 첼리스트로서 짧게는 12년, 길게는 39년을 함께 했던 단원들을 차례로 떠나 보냈고, 이제 자신이 떠나려고 하는 참이지요.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레퍼토리를 자랑하는 줄리아드 콰르텟은 이번 시즌에도 현대음악을 프로그램에 넣었습니다. 줄리아드 콰르텟을 위해 필라델피아 실내악 협회에서 위촉한 리처드 워닉의 신작 현악사중주가 대표적이지요. 다만,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이렇게까지 '하드코어한' 프로그램은 빠졌어요.
일본과 대만, 그리고 한국에서는 통영에서만 열리는 이번 아시아 투어에서는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12번 D. 703, 모차르트 '불협화음' 사중주 K. 465, 그리고 드뷔시 현악사중주 Op. 10이 연주됩니다.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현대적 파격을 시도한 고전 명곡, 그리고 현대음악 애호가가 아닌 사람이 거부감 없이 들을 수 있는 '마지노선' 정도로 평가받는 세기말의 명곡이지요.
영화에서는 첼리스트가 은퇴를 발표하고 마지막 공연을 하던 중, 결국 도중에 연주를 멈추고 새 첼리스트를 소개합니다. 줄리아드 콰르텟의 조엘 크로스닉은 영화와 달리 그렇게 갑작스럽게 떠나는 것은 아니에요. 은퇴를 예고한 지가 일 년이 넘었고, 이제 예정된 때가 왔을 뿐이지요. 아마도 올해로 만 75세가 되는 그는 이제 온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하기에는 기력이 달린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줄리아드 스트링 콰르텟과 함께 40년 넘게 활동한 조엘 크로스닉. 그의 마지막 연주를 기릴 만한 것으로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소개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그만해야겠습니다. 벗들이 너무 빨리 연주해서 제가 따라갈 수가 없군요. 이건 베토벤 탓입니다. Op. 131을 아타카로, 멈추지 말고 연주하게끔 해놨거든요. 저는 멈춰야겠습니다. 니나 리. 대단한 첼리스트입니다… 퓨그 콰르텟의 벗이지요… 오늘 공연의 나머지는 이분이 대신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니나, 부탁합니다. 로버트, 대니얼, 줄리엣, 그동안 여러분과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