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F앙상블 〈한국작곡가의 밤〉
2010년 12월 15일(수) 19:30
영산아트홀
홍성지 Tempestuous (2010) *
이홍석 Sempre mormorando für Flöte und Klavier (2010) **
신나라 Echo (from Scene1) (2009)
배동진 Stille suchen für Klavier, Vibraphone und Violine (2006/07) *
나실인 Pilgergesang für Flöte, Violine und Violoncello (2010) ***
박용빈 3 Toccatas and 2 Interlude for Large Ensemble (2010) ***
(***TIMF앙상블 위촉 세계 초연 **세계 초연 *아시아초연)
공짜 표를 준다기에 날름 신청했는데 대부분 모르는 작곡가다. 딱 한 사람, 홍성지는 내가 연주회 ☞리뷰를 쓴 일도 있어서 익숙한 이름이다. 서울시향이 홍성지한테 위촉한 피아노 협주곡이 가장 좋았는데 이제 보니 내가 리뷰를 안 썼나 보네. 아무튼, 제목 같은 것 다 잊어버리고 팸플릿도 없이 그냥 들었다.
※ 나중에 붙임: 알고 보니 첫 곡이 홍성지 《Tempestuous》였다고 한다. 급하게 준비한 탓에 연주가 썩 잘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내가 가장 좋게 들었던 곡은 신나라 《Echo (from Scene1)》였다. 이에 따라 내용을 고쳤다.
첫 곡이 피아노 독주곡이었으니, 홍성지 《Tempestuous》였나 보다. 화음 또는 클러스터를 퍼붓는 대목이 퍼니호우(Ferneyhough)랑 비슷했으나 그보다는 조금 얌전하다 싶었다. 이런 음악은 악보를 보면 몹시 복잡하겠으나 막상 귀에 들리는 소리는 차라리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이런 곡은 크지 않은 방에서 연주하면 제법 그럴싸할지도 모르겠지만, 영산아트홀이 생각보다 커서 피아노를 마구 두드려대어도 그에 걸맞은 음량이 나오지 않는다. 차라리 근접 마이킹(miking)해서 스피커로 쏴 주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전자음악 별거 있나.
이홍석 《Sempre mormorando für Flöte und Klavier》는 웬만하면 평범한 연주법을 쓰는 얌전한 음악이어서, 현대음악 맥락을 떠나 그냥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딱히 조성이 드러나지도 않고 선율이 귀에 쏙 들어온다거나 하지도 않아서 조금 지루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음악이 참 길기도 하더라. 무엇보다 얌전하기만 하고 제대로 때려 부수는 '한 방'이 없어 불만이었는데, 나중에 제목을 보니, 음… 속삭이는 음악이라는데 어쩔껴…-_-; 3악장(?)이었나, 피아노가 재즈 리듬에 저음군과 고음군이 대략 유니슨으로 연주하는 대목이 재미있었다.
신나라 《Echo (from Scene1)》는 이날 연주된 곡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으며, 홍성지 곡으로 잘못 알았다가 나중에 바로 알고 작곡가 이름을 기억해 두기로 했다. 가사를 한두 단어씩 끊어서 툭 툭 던지듯 말하는 대목은 딱히 낯설지는 않았지만, 가사가 우리말이다 보니 그 뜻에 자연스럽게 집중되며 뭔가 새롭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처음에는 음악 속에 묻혀서 잘 안 들리는 가사에 열심히 귀를 기울여야 할 듯한 강박감이 생기기도 했으나 곧이어 그럴 필요 없음을 깨달았다. 이를테면 베토벤 교향곡 9번에서도 몇몇 단어만 두드러져 들릴 뿐 모든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음악학자 주대창이 한 말을 빌자면, 이 곡에서 가사는 승화적(昇華的)으로 전달된다. 이렇게 한두 단어씩 끊어지는 가사 내용은 초현실적이었고, 그에 걸맞게 살짝 헤테로포닉한(?) 음악과 맞물려 마치 숨 가쁘게 교차편집된 영화를 보는 듯했다.
배동진 《Stille suchen für Klavier, Vibraphone und Violine》는 타악기 따위를 쿵 두드렸다가 재빨리 소리를 죽였을 때, 살짝 남은 소리가 악기 울림통 속에서 울리고 연주회장을 한 바퀴 돌며 또 울리다 마침내 귀에 들리는 소리를 잘 살린 대목이 인상 깊었다. 그런데 나중에 제목을 보니 "Stille suchen"이라, 제목 참 잘 지었다. 곡이 끝날 무렵 비브라폰을 손으로 두드려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저음에서 고음으로 꾸준히 올라가는 대목도 재미있었다. 이날 연주된 곡 가운데 두 번째로 마음에 들었던 작품.
나실인 《Pilgergesang für Flöte, Violine und Violoncello》는 들으면서는 참 잘 쓴 곡이라 생각했지만, 어째 집에 와서 기억에 남은 게 거의 없다. 결정적인 '한 방'이 없었기 때문일까. 현을 활로 두드리고 박박 긁거나 글리산도로 왔다갔다하는 등 현 소리를 다채롭게 살린 대목이 훌륭했다.
박용빈 《3 Toccatas and 2 Interlude for Large Ensemble》는 처음에 화음 또는 클러스터 하나를 계속 물고 늘어지는 대목이 홍성지 《Tempestuous》와 비슷했으며, 이거 혹시 유행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곧이어 음악이 요란해지는 대목부터는, 귀로 듣기에는 참 좋았지만… 어째 존 애덤스랑 너무 닮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앞에 나온 화음을 가지고 변주 비슷하게 했나 싶기도 한데, 그건 악보를 봐야 알 수 있겠지. 그런데 연주 끝나고 인사할 때 보니 참 어리다. 혹시 학부생? 곡을 짜임새 있게 이끌어 가는 솜씨와 음색을 맛깔스럽게 살리는 솜씨가 매우 훌륭하던데, 기억해 두어야 할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