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4일 월요일

2007.05.24. 바움가르트너 드림타임 / 맥밀란 베니, 베니, 엠마누엘 /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 - 아릴 레머라이트 / 서울시향

2007년 5월 24일(목)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Arild Remmereit
협연자 : Colin Currie(Per)

Baumgartner: Dream Time
MacMillan: Veni, Veni Emanuelle (30')
Dvorak: Symphony No. 7 in d minor, Op. 70 (35')



드림타임(Dreamtime)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구전설화를 뜻하는 말로 원주민 언어로는 알트지라, 웅가르, 주구르바 등으로 불린다. 신화 속의 과거인 '꿈의 시대'는 시작은 있으나 끝은 예상할 수 없는 영원한 현재이며, 구전문학으로서의 '꿈의 시대'는 짧고 단순한 문장과 변형된 반복구절을 사용하면서도 섬세하고 복잡한 내용이 특징적이다. 바움가르트너의 <드림타임>은 짧고 단순한 선율의 반복과 변형을 주요 특징으로 하며, 이것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음악과 서양의 미니멀리즘 음악 양식의 공통된 특징인 동시에 '꿈의 시대'의 '영원한 현재' 관념과도 통한다. 작품의 처음과 끝에 나오는 바순의 반복되는 5도 하행 음형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전통 악기인 디제리두(didjeridu)의 벌이 웽웽거리는 듯한 음향적 특징을 흉내 낸 듯하며, 몽환적인 반복 음형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중간 부분은 어쩐지 밀양 아리랑을 연상시켰다.

제임스 맥밀런은 앞서나가는 음악 어법을 추구하는 작곡가는 아니지만 영국을 대표하는 인기 '현대음악' 작곡가다. 그의 음악을 '낡은 음악'이라 하여 깎아내리는 의견도 있지만, 작곡가와 대중의 괴리가 심각한 수준인 오늘날 맥밀런 같은 대중적 작곡가의 역할을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다. 게다가 현대음악의 묘미 가운데 하나가 새로운 음향적 경험이라 보았을 때 <베니, 베니, 엠마누엘> 같은 작품은 매우 훌륭한 '현대음악' 작품이다. 미니멀리즘적 반복 음형의 도시적인 분위기는 타악기의 강력한 음향과 만나 묘한 고양감을 불러일으켰으며, 마치 도시의 밤하늘을 나는 기차를 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종반부의 투명하고 승화하는 듯한 분위기 또한 인상 깊었다. 타악기 협연자인 콜린 커리의 연주는 오케스트라의 색채감을 더하는 동시에 강력한 에너지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북받쳐 오르는 흥분을 이끌어내었고, 관객의 반응은 20세기 작품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뜨거웠다. 이런 작품이 대중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아서 현대음악을 굳건히 둘러싼 심리적 장벽을 허물었으면 좋겠다. 내가 TV 광고주라면 이 작품을 배경음악으로 활용하겠다. 이를테면 현악기의 반복 음형에 금관과 타악기가 어우러지는 부분은 캔 커피 광고에 잘 어울릴 것 같다. 캔 커피와 함께 하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이번 연주회의 숨은 키워드가 '미니멀리즘'이라 한다면,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7번은 19세기 작품이지만 단순한 음형의 고집스러운 반복과 변형이 20세기 음악 사조인 미니멀리즘과 통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날 연주가 이 점을 특별히 부각시킨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았으며, 그러기에는 악단의 기능성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했다. 물론 이날 연주는 충분히 호연이라 할 수 있었다. 작품의 거시적인 구조도 잘 살렸고, 악기 간 밸런스도 훌륭했다. 다만, 지휘자 아릴 레머라이트가 이제껏 보여준 실력에 비추어 생각하면 높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친 평범한 연주였다. 서울시향의 집중력은 평소 실력보다 약간 나은 정도였고, 음색의 세련됨도 마찬가지 수준이었다.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연상시키는 단단한 힘도 부족했다. 무엇보다 레머라이트 특유의 선명하고 재치있는 다이내믹의 변화가 없었다. 레머라이트는 결코 평범한 지휘자가 아니다. 외람되지만 머지않아 정명훈과 같은 거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한 사람이다. 서울시향의 앙상블이 흐트러질 때마다 재빨리 수습하는 능력만 봐도 그 실력이 어디 도망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원인은 연습이 충분치 못했던 것일 터. 그는 원래 서울시향의 부지휘자로 활약했던 사람인데, 이제 보니 계약이 끝났는지 그런 말을 찾아볼 수 없다. 일개 객원 지휘자로 그에 걸맞은 연습시간만을 배정받았던 것일까. 나는 서울시향이 그를 좀 더 특별하게 대우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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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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