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goclassic.co.kr/fishtail/1248785425
사람마다 '민주주의'에 대한 관점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모더니즘'에 대한 관점 또한 다를 수 있지요. 그러나 '민주주의'를 믿는 사람이라면 합의에 이를 수 있는 지점은 있게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더니즘'에 대한 생각이 저마다 다르더라도 '발전' '진보' '구조' 같은 개념들은 '모더니즘'이라는 대명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fishtail님이 말씀하신 "서양음악의 하모니와 주제의 기초를 뒤흔들려는 표현주의적인 충동"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19세기 기능화성을 버리더라도 다른 맥락에서나마 '화음'은 남게 마련이며, 그 바탕에 깔린 '질서'와 '구조'는 오히려 더욱 탄탄해질 뿐입니다. 음악에 정치적 사상을 담아야만 "진보사관"과 엮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음악을 이루는 얼개에 이미 모더니즘이 녹아들어 갔다는 말이에요. 음악학자 크리스티안 카덴은 이를 두고 "역사의 완성"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그의 음악 활동과 작품들을 통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반화되어 있는 역사모델, 즉 헤겔의 세계정신에 기인하며 인류의 발전과 진보를 계산에 두는, 그리고 선(線)적인 시간 개념에 사로잡혀 있고 사회의 자율적 움직임과 음악 재료들의 자율적 움직임에 의거하는 역사모델을 훼손했다. (...) 그는 아주 분명하고 도발적으로 서양문화의 터부에 대항했다. 표현예술과 표현수단으로서의 음악 개념에 대항한 것이다. 적어도 계몽주의시대부터 이 개념은 (극진한 보호를 받는) 상투어가 되었고 문화 진열장에서 부동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 개념은 음악의 표현주의와 20세기 초 무렵의 음악에서의 일종의 역사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비약적인 발전을 맞기까지 했다. 쇤베르크와 그의 제자들이, 또 프란츠 슈레커(Franz Schrecker)의 오페라가 이에 한 몫을 했다.
- Christian Kaden, 나주리 옮김, "20세기의 음악과 세계관: 스트라빈스키의 경우." 『음악이론연구』(서울: 서울대학교 서양음악연구소, 2006), 제11권, pp.209-230.
'근대적인' 화성 이론에 이미 '발전'이나 '목표 지향' 같은 개념이 깔렸고, 그것이 더 튼튼한 질서에 따라 거듭나고 '표현주의'가 이에 더해진 20세기 양식이 '역사의 완성'이라는 말입니다. 무조 음악이 전통의 '단절'이 아니라 거꾸로 전통의 '완성'이며 '필연'이라는 관점에는 수많은 음악학자가 동의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화성 이론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장 필리프 라모에 이르게 되지요. 라모는 화성 이론을 설명하면서 뉴튼의 중력 이론에 빗대기도 했습니다. 제가 위에 '베토벤스러운'이라는 말을 했으나 참된 뿌리는 '라모'에서부터 비롯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되 '음모론'은 빼고 읽으세요.
http://wagnerian.textcube.com/428
그런가 하면, 쇤베르크가 스트라빈스키를 옹호한 일은 사상가와 예술가의 온도차 정도로 받아들여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위에 제가 인용한 말을 보아도 사상가(아도르노, 블로흐)와 예술가(베르크)가 뚜렷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쇤베르크는 예술가인 만큼 사상을 가지고 예술의 자유를 깎아내리려는 행동을 경계하는 게 당연하다는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