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0일 금요일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비의 노래'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


이정경: 슈만이 죽고 클라라가 혼자 애들을 키웠잖아. 막내아들이 많이 아프다가 결국 죽었거든. 그 소식을 듣고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짧은 멜로디를 써서 편지를 보냈어. 그게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 2악장이야.

한현호: 그게 브람스식의 위로고 위안이었구나. 말보단 음악으로… 근데 직접 찾아서 위로해 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

윤동윤: 브람스가 그런 행동파였으면 진작 클라라랑 이어졌게?

이정경: 브람스는 말보다 음악이 더 편했나 보지. 준영이처럼…

윤동윤: 근데 음악이 진짜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현호 말대로 진짜 슬프고 힘들 땐 말 한마디가 더 큰 힘이 되는 것 같은데…

채송아: 그래도 믿어야 하지 않을까요. 음악이 위로가 될 수 있다고요. 왜냐면… 우리는 음악을 하기로 선택했으니까요.

얼마 전 종영한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이 드라마에 제법 중요한 소재로 나오는 작품이지요. 채송아(박은빈 분)가 박준영(김민재 분)의 반주로 이 작품을 연주하는 장면도 있지만, 음악이 스쳐 지나가는 소품 정도로 쓰였을 뿐 음악의 힘이 드라마를 이끌어 가게끔 연출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했습니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에는 ‘비의 노래’(Regenlied)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브람스가 가곡 ’비의 노래’에서 따온 선율을 3악장에 사용했기 때문인데, 브람스는 이 작품에 대해 “비 오는 저녁의 달콤씁쓸한 분위기”라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는 비 오는 장면이 때때로 극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브람스 가곡 ‘비의 노래’ Op. 59 No. 3의 가사이자 클라우스 그로트(Klaus Groth, 1819~1899)가 쓴 원작 시는 이렇습니다.

쏟아져라, 비야, 쏟아져라, / 나 어릴 적 꾸었던 그 꿈에서 / 다시 한번 나를 깨워다오 / 빗물이 모래 속에서 거품 짓는 시간에!

(중략)

쏟아져라, 비야, 쏟아져라, / 우리가 문 앞에서 불렀던 / 옛 노래를 깨워다오 / 빗방울이 밖에서 소리치는 시간에!

나 다시금 듣고 싶어라 / 달콤하고 촉촉한 소리를 / 내 영혼 부드럽게 젖어들어라 / 어린이의 순수한 경외감에.

비 오는 저녁 느낌은 사실 1악장을 시작하는 선율에서부터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이사벨러 판 쾰런이 지난 2015년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이 곡을 연주했을 때, 저는 프로그램 노트에 이렇게 썼습니다. “브람스는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살살 녹는 첫 주제를 들으면 바로 알 수 있어요.”

브람스가 말한 ’달콤씁쓸한 분위기’는 1악장에서는 달콤함이 우세하고, 2악장에서는 씁쓸함이 우세합니다. 세도막 형식으로 된 2악장의 가운데 부분은 장송행진곡입니다. 3악장에서는 슬픈 선율로 시작해 조금씩 달콤함을 회복해 나가다가 슬픔을 새로운 희망으로 승화시키며 끝맺습니다.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첼리스트 한현호는 바이올린을 하는 사람은 다들 브람스 소나타 1번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또는 어쩌면 드라마를 본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이 곡을 더욱 좋아하게 되어서일까요? 11월 22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남훈, 12월 12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석중이 윤이상기념관에서 이 곡을 연주합니다. 아무쪼록 바이러스가 잘 통제되어서 두 공연이 무사히 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 찾기

글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