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둘에(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황진이가 쓴 시조입니다. 통영국제음악제 음악극 ‹귀향›에서 박민희 선생이 불렀던 여창가곡 우조 이수대엽 '동짓달'이 어찌나 멋지던지요! 몬테베르디 오페라 ‹율리시스의 귀환›과 한국 전통 여창가곡이 어우러진 음악극 ‹귀향›을 보면서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율리시스도 페넬로페도 아닌 박민희 선생이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지요. 공연을 보고서 저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교차하고, 동양과 서양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공명하며, 그럴 때마다 짜릿하고, 뭉클하고, 통쾌합니다." 2018년 한 해 통영에서 있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었습니다.
파비오 루이지 & KBS교향악단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도 생각 이상으로 대단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정명훈 시절 서울시향의 말러에 견줄 만한 명연이었지요. "대다수 지휘자가 3악장에서 시나이 산 꼭대기에 머무는 반면, 루이지는 '약속의 땅'에 과감하게 한 발을 들여놓는다."라고 극찬했던 음악평론가 황진규 씨의 음반평이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아닌 KBS교향악단의 연주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생생하게 재현되었던 현장이었고, 특히 3악장 마지막이 압권이었습니다.
그밖에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스티븐 슬론 지휘 보훔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말러 교향곡 9번과 윤이상 ‹광주여 영원히›,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진은숙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퍼즐 & 게임 모음곡 등도 멋졌고, 마라톤 콘서트에서 소프라노 황수미가 부른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중 '왕자님 들어보세요'(Signore, ascolta!)에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도 나고, 아르테미스 콰르텟의 압도적이고 충격적인 연주 실력과 알렉세이 루비모프의 투명하고 몽환적인 음색, 슬로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교향곡 7번과 최수열이 이끄는 부산시립교향악단 & 김선욱의 슈트라우스, 베토벤, 윤이상도 좋았습니다.
통영 밖에서 보았던 공연 중에서는 여름 휴가 때 뮌헨에서 봤던 공연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바그너 오페라 ‹파르지팔›이 대단했지요.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베이스 르네 파페(구르네만츠),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파르지팔), 소프라노 니나 스템메(쿤드리), 바리톤 크리스티안 게르하허(암포르타스), 베이스바리톤 볼프강 코흐(클링조르) 등, 내 인생에 다시 있을까 싶은 드림팀이 출연한 압도적인 명연이었지요. 바이로이트가 아닌 곳에서 연주하는 ‹파르지팔›은 음향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면서도 음악이 주는 감동이 너무나 컸습니다.
‹파르지팔›을 보면서 가장 울컥했던 순간은 1막 소년들의 합창이었습니다. "믿음이 이어지고 비둘기 날아올라 구세주 사랑 알리나니 / 너희에게 따라 놓은 포도주를 마시라 생명의 빵 먹으라!" 소년들의 맑은 목소리와 엄숙한 제의적 분위기, 그리고 신비로운 음향효과가 어우러지면서 어떤 음반으로도 느껴보지 못한 생생한 감동이 몰려오더군요. 3막 성배의식 전의 관현악은 제가 이제껏 들어본 어떤 연주보다도 고통스럽게 느껴졌고, 음악이 너무 고통스러워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대단한 연주가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지휘자의 힘이었겠지요. 키릴 페트렌코, 과연 대단한 사람입니다. 저는 몇 해 전에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본 일이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때도 참 대단하기는 했지만 연출가 프랑크 카스토르프 때문에 '차 떼고 포 떼고' 지휘한 거였구나 싶더군요. 무대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너무 커서 음악을 망쳐놓곤 했거든요. 지난해 다시 가보니 같은 연출이라도 소음이 크게 줄어서 괜찮았습니다.
암포르타스 역 바리톤 크리스티안 게르하허의 엄청난 실력에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도 나는데, 이 얘기는 지면 관계상 다음 기회에 말씀드릴게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지난 2017년에 가장 좋았던 공연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봤던 ‹파르지팔›이었네요. 통영국제음악당에서도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