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22일 금요일

피에르 불레즈, 위대한 음악가를 추모하며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그런데 그 콧대 높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을 잔뜩 긴장하게 만드는 지휘자도 있더라고요. 20세기 관현악곡을 연주하는데, 트럼펫 연주자 하나가 틀린 음을 연주했어요. 그런데 틀린 대목에서 트럼펫 네 대가 독립적인 선율을 연주합니다. 결정적으로 무조음악이고, 다른 악기까지 더하면 무시무시한 음표의 카오스 상태이지요. 그런데 지휘자는 두 번만에 '범인'을 잡아냅니다! 살아남은(?) 단원들이 가슴을 쓸어내려요. 그 지휘자는 피에르 불레즈였습니다."

제가 예전에 「지휘자는 무슨 일을 하나요?」라는 글에서 했던 말이지요. 세기의 황금귀로 유명했던 작곡가이자 지휘자 피에르 불레즈가 지난 1월 5일 독일 바덴바덴에 있는 자택에서 향년 90세로 타계했습니다. 소식이 전해진 때는 한국 시각으로 1월 6일 저녁 8시 30분 경이었고, 소셜미디어 등을 타고 순식간에 온 세계로 소식이 퍼지면서 클래식 음악계가 충격에 빠졌습니다.

음악 애호가에게 지휘자로 훨씬 유명했지만, 불레즈는 본디 작곡가였습니다. 지휘자가 된 까닭은 현대음악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했기 때문이었다지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일화가 있습니다. BBC에서 불레즈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을 때, 시사회장에서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요즘은 고전 · 낭만 시대 작품을 많이 지휘하지 않느냐고요.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그건 취미생활입니다."

불레즈 타계 소식을 듣고, 추모하는 뜻으로 제가 페이스북에 가장 먼저 올린 음악은 1997년 작 《앙템 II》(Anthèmes II)입니다. 이 곡은 《…고정된 폭발…》(…explosante-fixe…)을 원작으로 하는데, 플루트와 앙상블, 그리고 전자음악을 위한 원곡을 바이올린 독주곡으로, 다시 바이올린과 전자음악을 위한 곡으로 고쳐 쓴 작품이지요. 이른바 '총열주의'를 대표하는 《구조》라는 작품만으로 작곡가 불레즈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음악을 듣고 생각이 좀 달라질 거예요.

영국 일간지 『가디언』 소속 음악평론가 피오나 매독스와 미국 주간지 『뉴요커』 소속 평론가 알렉스 로스는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주름 위의 주름》(Pli selon Pli)을 추천했습니다. 그밖에 《주인 없는 망치》(Le Marteau sans maître), 《파편》(Éclat), 《응답송》(Répons), 《파생》(Dérive), 《메사제스키스》(Messagesquisse) 등이 그날 밤 전문가와 애호가 사이에서 불레즈의 대표작으로 거론되었습니다.

지휘자 불레즈는 말보다 몸짓으로 원하는 소리를 이끌어내곤 했다지요. 그러나 사실 그는 말과 글이 뛰어나기로 유명했습니다. 젊은 시절에 썼던 「쇤베르크는 죽었다」라는 글이 특히 유명하지요. 불레즈는 쇤베르크에게 큰 영향을 받았지만, 이 글에서 그는 쇤베르크 음악에서 12음 기법을 빼고 나면 음색과 음 길이 등 다른 요소들은 구시대적이라는 점을 비판했습니다.

불레즈는 베베른을 쇤베르크보다 높이 평가하면서도 베베른 또한 리듬 사용이 혁신적이지 않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그는 스승이었던 메시앙마저도 모질게 비판하는 등 자신이 영향받았던 작곡가와 음악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고, 나아가 자신의 작품마저 여러 차례 고쳐 쓰는 등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했습니다.

불레즈는 예술행정가로서도 커다란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프랑스 음악계가 너무나 보수적이라고 생각했기에 '자발적인 망명'으로 독일과 미국 등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그런 그를 프랑스로 돌아오게끔 한 것은 프랑스 정부의 어마어마한 경제적 · 행정적 지원이었습니다. 조르주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이 전권을 위임하겠다며 불레즈를 설득했다고 하지요.

그래서 그는 현대음악 역사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칠 두 단체를 만들어 이끌게 됩니다. 퐁피두 센터 산하 음악 · 음향 연구 기관이자 전자음악의 아이콘으로 평가받는 이르캄(IRCAM),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현대음악 연주단체로 평가받는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렝(Ensemble InterContemporain)입니다.

대가의 죽음과 함께 한 시대가 마감된 느낌이 듭니다. 이번 통영국제음악제 또는 ISCM 세계현대음악제 프로그램에 불레즈 작품을 한두 곡쯤 더할 수 없을까 요즘 고민하고 있어요. 아직 확정 단계는 아니지만, 불레즈를 좋아하는 현대음악 애호가들은 기대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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