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3일 금요일

훔멜 오페라 《마틸데 폰 구이제》 서곡,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입니다.


훔멜: 오페라 《마틸데 폰 구이제》 서곡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클래식 음악 공연장 분위기는 매우 자유로워서, 관객이 공연 중에 웃고 떠드는 일이 예사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공연 시작하니까 그만 떠드세요!' 하는 신호를 주는 음악이 필요했고, 그런 목적으로 오페라 시작에 앞서 연주하게 된 기악곡을 서곡(Overture)라고 하지요. 오페라 《마틸데 폰 구이제》 서곡은 그런 목적에 매우 충실한 곡입니다. 팡파르처럼 뿜빰거리면서 관객의 주의를 끌고, 듣기 좋은 선율과 리듬으로 자연스럽게 음악에 집중하게끔 하지요.

이 오페라는 공작가 아가씨 '마틸데 폰 구이제'가 주인공인 흔한 연애물입니다. 훔멜은 모차르트의 제자이자 대략 베토벤과 동시대 사람으로 특히 쇼팽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작곡가입니다.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출생이며, 그곳은 당시 헝가리 영토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했기 때문에 훔멜은 오스트리아 작곡가로 분류됩니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쇼팽 피아노 협주곡은 오케스트라 반주가 있는 피아노 독주곡에 가깝습니다. 협주곡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오케스트라는 피아노를 빛나게 하는 일에 그치고 피아노가 절대적인 역할을 하며 음악을 이끌어 나가지요. 협주곡 2번의 짜임새는 1악장 소나타 형식, 2악장과 3악장은 세도막 형식이지만, 쇼팽 작품이 흔히 그렇듯 이 작품의 구조를 따지는 일은 학술적인 목적이 아닌 이상 무의미합니다. 쇼팽이 피아노로 쓴 시를 그냥 가슴으로 느끼면 되지요.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는 2악장은 쇼팽이 당시 짝사랑하던 여학생을 생각하면서 쓴 곡으로, 남몰래 간직한 사랑이 잔잔한 화음 속에 절절한 피아노 선율이 되어 흐릅니다.

이 작품은 쇼팽이 프랑스 파리에서 스타 작곡가로 명성을 날리기 전에 폴란드에서 활동하던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며, 작곡가는 피아노 협주곡 1번보다 한 해 앞서 이 곡을 썼습니다. 순서가 뒤바뀐 까닭은 1번 협주곡이 먼저 출판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지요.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

이 작품은 작곡가가 '필하모닉 소사이어티'(Philharmonic Society) 명예 회원이 되면서 위촉을 받아 쓴 곡입니다. 런던에 있는 이 단체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을 포함해 수많은 명작을 위촉한 곳이기도 하지요. 드보르자크는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새 교향곡은 베토벤의 유산을 계승하는 작품,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작품, 그러니까 베토벤-브람스로 이어지는 독일적인 논리와 질서가 있는 작품이어야 했습니다. 마침 브람스 교향곡 3번을 듣고 감명을 받은 참이기도 했지요.

그렇게 탄생한 교향곡 7번은 드보르자크 교향곡 가운데서도 베토벤-브람스 패러다임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작품입니다. 체코 작곡가로서 그동안 보이던 '지역색'은 그만큼 옅어졌지요. 그리고 베토벤-브람스 음악을 본받은 모티프 발전 기법과 논리적인 전개 방식, 치밀한 대위법 등이 이 작품에 나타납니다. 악보를 보면, 특히 1악장 발전부와 종결구에 공을 많이 들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1악장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이나 브람스 교향곡 1번과 견줄 만큼 어둡고 심각하게 시작해 치밀한 짜임새로 발전해 나갑니다. 제2 주제는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3악장을 여는 첼로 선율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에 앞서 제1 주제가 살짝 이완되면서 제2 주제로 착각할 만한 선율이 마치 에피소드처럼 나타나지만, 이내 제1 주제로 되돌아갑니다.

2악장은 주제가 셋 있는 소나타 형식으로, 느린 악장답지 않게 짜임새가 복잡합니다. 그러나 선율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음악을 듣고 있으면 형식을 따지는 일이 부질없다고 느껴지지요. 서럽게 흐르는 선율과 화음 속에서 맑게 반짝이는 플루트 소리가 오히려 슬프게 들립니다.

3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 형식입니다. 드보르자크는 기차 마니아로 유명했고, 작품에 기차 느낌을 곧잘 담아냈던 작곡가이지요. 교향곡 7번의 다른 악장에서도 그런 느낌이 있지만, 3악장을 여는 선율과 리듬에서 기차 느낌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듯합니다. 기차 여행의 설렘이 현실의 고뇌와 교차하며 독특한 매력을 주는 악장입니다.

4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베토벤 교향곡 9번이나 브람스 교향곡 1번에 나타나는 '어둠에서 광명으로' 짜임새와 비슷하면서도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마지막까지 찬란하게 쏟아지는 으뜸화음은 나오지 않지요. 작곡가는 그 대신 작은 희망 조각을 부여잡고 어둠 속을 꾸준히 한 걸음씩 전진하는 일이 현실에서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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