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7일 일요일

작품 설명: 류재준 《장미의 이름》 서곡, 바이올린 협주곡 1번, 교향곡 1번 '레퀴엠' (Sinfonia da Requiem)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매거진에 실은 글입니다.

원문 링크 : http://g-phil.kr/?p=1475

▶ 장미의 이름 서곡

움베르토 에코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장미의 이름》은 해외에서 위촉받아 작곡 중인 미완성 오페라로, 그 중 서곡이 먼저 발표되어 지난 2012년에 초연되었다.

소설 『장미의 이름』은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추리소설인 동시에 중세 도그마와 근대정신이 대립하는 신학 논쟁, 중세인의 생활상과 세계관 묘사, 고전 문헌에 대한 패러디 등이 내용의 중심이 되는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327년 겨울, 프란체스코회 수도회의 수도사 윌리엄과 멜크 수도원의 젊은 수련사 아드소는 황제와 교황의 회담 준비차 회담이 열릴 어느 수도원에 도착한다. 수도원장은 장서관에서 일하던 수도사가 시체로 발견된 사건을 윌리엄 수도사에게 알리며 교황 측 조사관이 오기 전에 사건을 조사해 달라고 부탁한다.

사건 수사 중 수도사와 장서관 사서, 보조사서 등이 잇달아 시체로 발견된다. 윌리엄은 추론 끝에 사건의 경위를 알아내고 장서관에서 밀실을 찾아낸다. 그곳에는 금지된 책을 수도사들이 읽지 못하도록 막아온 늙은 수도사 호르헤가 있었다. 윌리엄과 호르헤는 한 치 물러섬 없는 신학 논쟁을 펼친다.

사건의 발단이 된 금지된 책은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2권의 유일한 필사본이었다. 작품 속에서 설정으로만 존재하는 이 책은 희극과 웃음의 가치를 논하는 내용을 담았으며, 실존하는 책이자 비극에 관해 논한 『시학』(제1권)과 대비된다.

호르헤 수도사는 신념을 지키고자 장서관에 불을 지르고 그곳에서 죽는다. 중세 최대 장서관이었던 그곳은 사흘 동안 타오르며 결국 폐허가 된다.

▶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폴란드 라보라토리움 현대음악제 위촉으로 작곡되었으며, 2006년 피오트르 보르코프스키가 지휘하는 포들라시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초연한 뒤로 유럽에서 10회 이상 공연되었고, 미국에서는 막심 벤게로프 협연으로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지휘하는 디트로이트 심포니 등이 공연한 명곡이다.

바르샤바 쇼팽 음악원의 마리안 보르코프스키 교수는 이 작품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작곡가가 현대적인 표현 기법을 사용했음에도 사실은 낭만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류재준은 저명한 스승과 조언자들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며, 아울러 유럽 음악 전통, 특히 19세기 초반 유산에서 가장 훌륭한 특징을 가져다 창의적인 방식으로 다루었다.

이 작품은 류재준의 비범한 재능, 관현악의 색채감과 질감에 대한 감수성, 극적인 진행에 관한 관심과 건축적 능수능란함을 증명한다. 말러(Mahler)처럼 절묘한 클라이맥스, 느리고 명상적인 도입부와 심오한 표현, 아름답고 서정적인 바이올린 독주를 주목할 만하며 […] 또한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기발하게 상호작용하면서 독주자가 기교를 (전형적인 '불꽃 테크닉'은 없을지라도) 뽐내는 가운데 대편성 오케스트라가 음향적 장관을 펼칠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적이다.

▶ 교향곡 1번 - 레퀴엠

작곡가 류재준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준 이 작품은 2008년 5월 폴란드 루드비히 판 베토벤 음악제에서 우카시 보로비치(Łukasz Borowicz)가 지휘하는 폴란드 방송교향악단이 초연하였고, 당시 폴란드 관객 전원이 10여 분간 기립박수를 보냈을 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곡이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추모식에 쓰이면서 ‘정주영 레퀴엠’이라고 알려지기도 했으나, 류재준 작곡가는 이것이 작품의 순수성과 배치된다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 작품 진혼교향곡 'Sinfonia da Requiem'은 순수음악으로써 어떠한 기타 표제적인 성격이나 내용을 담지 아니한다.

이 작품은 지금의 한국을 만든 모든 이들에게 드리는 헌정일 뿐 일개인에게 헌정된 작품이 아니다.

이 작품을 ‘정주영 레퀴엠’이라고 하는 것은 고 정주영 회장의 아들인 정몽일 씨가 이 작품을 쓰게 될 단초를 제공하였고 작품이 만들어진 후 고 정주영 회장의 추모식에 쓰면서 일방적으로 붙인 작품명일 뿐이며 이는 이 작품의 순수성과는 배치된다.

이 작품은 작곡가 류재준의 1번 교향곡으로 명명될 것이며 정식 이름은 진혼교향곡‘Sinfonia da Requiem'이고 헌정은 한국의 현재를 만든 우리의 전세대(前世代)에게 하는 것으로 더 이상의 논란의 여지가 없음을 분명히 한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그리고 소프라노가 삶과 죽음, 슬픔과 희망을 노래하는 이 작품의 가사는 라틴어 미사통상문에서 따왔으며, 우리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1악장 : 영원한 안식을 (Requiem aeternam)

주님, 영원한 안식을 그들에게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시온에서 찬미함이 마땅하오니
예루살렘에서 내 서원 바쳐 지리이다.
나의 기도 들어주소서
모든 사람들이 당신께 오리이다
주님, 영원한 안식을 그들에게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스도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2악장 : 진노의 날 (Dies irae)

진노의 날 (Dies irae)

진노와 심판의 날이 임하면
다윗과 시빌의 예언 따라
하늘과 땅이 모두 재가 되리라.
모든 선과 악을 기리시려
천상에서 심판관이 내려오실 때
인간들의 가슴은 공포로 찢어지리!

나팔소리 (Tuba mirum)

놀라운 나팔소리가
세상의 모든 무덤 위에 올리며
모든 이를 보좌 앞에 모으리라
심판관 주께 답변하러
모든 피조물이 깨어날 때
죽음이 엄습하고 만물은 진동하리

기록된 책 (Liber scriptus)

보라! 모든 행위 기록들이
엄밀하게 책에 적혔으니
그 장부 따라 심판하시리
심판관 주께서 좌정하실 때
모든 숨겨진 행위가 드러나리니
죄지은 자 벌받지 않는 일없으리라

가엾은 나 (Quid sum miser)

가엾은 나는 무엇을 탄원하며
누가 나를 위해 중재할까?
자비가 필요한 그때는 언제일까?

위엄과 공포의 왕 (Rex tremendae majestatis)

위엄과 공포의 왕,
값없이 우리를 구하시니 긍휼의 근원이시여,
그때에 우리를 도우소서

눈물의 날 (Lacrimosa)

눈물의 날, 그날이 오면!
땅의 먼지로부터 일어난
심판 받을 자들이 주 앞에 나아오리
천주여 자비로써 그들을 사하소서
긍휼의 주 예수여 축복하사
그들에게 당신의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3악장 : 봉헌송 (Offertorio)

봉헌 (Offertorio)

영광의 왕, 주 예수, 그리스도.
죽은 모든 신자들의 영혼을
지옥의 형벌과 깊은 구렁에서 구하소서
사자의 입으로부터 그들을 구하소서
지옥이 그들을 삼키지 않게 하시고
그들이 어둠 속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성 미카엘의 인도에 따라
일찍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약속하신
거룩한 빛의 세계로 그들을 이끄소서

산 제물을 (Hostias)

주여, 찬양과 기도의 산 제물을 드리니
오늘 우리가 추도하는 영혼들을 위해 받아주소서
주여, 일찍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그들을 사망을 지나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지옥의 형벌로부터 신자들의 영혼을 구하시어
그들을 사망을 지나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4악장 : 거룩하시도다 (Sanctus)

너, 시온의 비탄에서 일어나라

거룩하시도다 (Sanctus)

거룩, 거룩, 거룩
만군의 주
하늘과 땅이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하도다

찬미 받으소서 (Benedictus)

높은 곳에서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높은 곳에서 호산나!

영원한 안식을 (Requiem aeternam)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주님, 영원한 안식을 그들에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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