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에 연재중인 글입니다.
원문: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672687
지휘자는 앞에서 팔 휘젓는 일이 다인데 그런 사람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이 가끔 있어요. 질문을 바꿔 보죠. 영화감독은 '레디, 고!'와 '컷!'을 외치는 일 말고 무슨 일을 할까요? 연기는 배우가 하고 촬영은 카메라맨이 하는데요? 설마 그게 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겠죠? 지휘자도 영화감독과 비슷합니다. 템포, 음색, 셈여림 등 음악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를 결정하고 구체적인 연주법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지면이 짧으니 오늘은 눈에 보이는 '박자 젓기'(beating)에 대해서만 말씀드릴게요.
학교에서 녹음된 반주에 맞춰 애국가를 불러요. 그런데 '우리가' 노래를 끝내고 나니 반주는 아직 한참 남았어요! 이런 경험 다들 해봤죠? 그런데 비슷한 실수를 프로 합창단도 하더라고요. 음악이 복잡한데 무대 음향은 나쁘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다른 단체라서 연습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면 그럴 수 있지요. 하지만 실제 공연장에서 그런 사고가 일어났을 때 관객이 너그럽게 이해해줄 리는 없잖아요? 이때 재빨리 사태를 수습할 책임은 지휘자한테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에 서로 다른 예비박을 줘서 순식간에 '티 나지 않게' 템포를 맞춰야 합니다. 저는 실제로 그런 묘기를 본 일이 있어요.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도입부. 누구나 한 번쯤 이 곡으로 '남이 보면 안 되는 지휘 생쇼'를 해본 일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음반을 틀어놓고 해보면 음악이랑 손동작이 잘 안 맞죠! 이 대목은 실제 공연장에서도 '사고'가 잦습니다. '따따따 따안―' 하는 처음부터 빠른 음형이 그것도 여린박으로 갑자기 튀어나오기 때문이죠. 8분음표로 시작하므로 지휘자가 8분음표만큼 예비박을 주면, 팔 움직임이 너무 날카로워서 첫 박으로 착각하기 딱 좋아요. 예비박이 아닌 예비 '마디'를 세 마디나 주면 확실하지만, 그러면 모양새가 너무 안 좋아요. 바로 뒷부분이 더 까다로운데,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