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2일 수요일

단재 신채호의 “종족주의” 역사관

“우리 역사냐 아니냐”의 구분 짓기의 기준으로는 결국 “단군의 신성한 피”의 유무 여부가 되고 말았다. 일찍이 단재의 이와 같은 사관 (史觀)은 연구자들에 의해서 “종족주의적 역사”라고 규정된 바 있었다. 특히 1970-80년대의 연구자들이 신채호의 엄격한 “종족주의”를 “항일 독립 운동의 필요성”과 연결시켜 “불가피했다”는 방식으로 비교적으로 긍정적으로 이해했는데, “항일 독립 운동”의 시대가 완료된 지 이미 오래된 오늘날에 와서도 고대사 학계에서 한국 상고, 고대의 근본적 그림을 이와 동질적인 방법으로 구상한다. 즉, “신성한 부여족” 대신에 “예맥” (濊貊)을 “한국인의 혈통적 조상”으로 보는 것이고, 청동기의 무문토기 등을 “예맥인의 물질 문화”로 설정해 예맥족 계통으로 이해되는 부여와 고구려, 그리고 남한의 삼한 등을 “한국사의 주류”로 보는 것이다. 즉, 어느 정도의 동질성이 있는 “한국인의 혈통”을 찾으려는 차원에서는 신채호의 방법론과 오늘날까지의 국내 고대사 학계의 방법론 사이에 일정한 연관관계는 보인다.”

- 박노자, "단일 민족"의 신화: 7월13일 강연 노트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2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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