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 26일 화요일

쇼스타코비치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2006. 9. 24)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Леди Макбет Мценского Уезда) - 헬리콘 오페라단
9월 24일 오후 5시
성남아트센터 오페라 극장
지휘: 블라디미르 폰킨
연출: 드미트리 버트만
가수 등 자세한 정보는 귀찮아서 생략 ㅡ,.ㅡ

이래저래 바빠서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마지막 날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배 째라 가자!' 쪽으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혹시 몰라서 못 가시는 분이 있으실까 봐 바그네리안 게시판과 블로그에 올렸는데, 장원 형님이 그걸 보신 모양이네요. 남는 표가 하나 있답니다. 앗싸~ $.$
 
그런데 이 작품이 영 낯설어서, 딴 짓 하면서 배경음악으로 듣기 시작한 것이 2-3일 전부터였고, 대본은 공연 날 지하철에서 읽었고(전에 읽어본 적이 있어서 줄거리는 알고 있었음), 대본 보면서 들어본 적은 없고 악보는 구경도 못해봤네요. 그래서 그냥 잡담 위주로 씁니다. 뭐 딴에는 음악적인 얘기도 좀 하겠지만 제가 평소에 바그너 연주회 갔다 와서 쓰는 것처럼 쓸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께는 대략 골룸. ㅡ,.ㅡ
 
이하 반말 모드.
 
2층에서 오케스트라 피트를 보니, 역시 좁다. -_-;
 
1막에서 타악기 같기도 하고 스피커 잡음 같기도 한 이상한 소리가 나서 어리둥절했는데, 타악기를 대신했던 신서사이저가 고장이 났던 모양. 그러니까 오케스트라 피트가 넓었으면 진짜 타악기 썼을 거 아냐? 앙? -_-^
 
보리스가 "남편과 작별하면서 눈물 한 방울도 안 흘려?"에서 "prolila" 할 때 6도 하행해서 2옥타브 A 플렛에 이르는 저음 처리가 멋진데, 이날 공연에서는 음반으로 듣던 것보다는 좀 약했음.
 


"a sama khot slezinku prolila." Aage Haugland(정명훈 판). (c) 1993 DG. 음량은 김원철이 조정했음.
 
음반에서 일부를 인용하는 것은 인용 목적이 분명할 경우 저작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에헴~
 
아크시냐 희롱당하는 장면은 아크시냐의 비브라토가 핵심. 타악기 위주의 빠른 비트 때문에 음고 위주의 '한국적(?)' 비브라토(폭이 넓고 느린)가 나오면 분위기 완전 망치겠다는 생각을 정명훈 판을 들으면서 했는데, 역시 사람 생각은 다 비슷한 모양. 이날 나온 가수(이름이 뭐였는지는 찾아보기 귀찮아서 생략 ㅡ,.ㅡ)의 비브라토 주파수는 정명훈 판과 거의 일치. 진폭 위주의 빠르고 단단한 비브라토. 옥에 티는 성량이 좀 작았다는 건데, 연주회장 탓도 있지 싶음.
 
아크시냐 희롱 장면 끝에 농부가 "주인마님 떴다! Barinya!" 하는 부분에서 관현악을 갑자기 멈춰서 농부의 목소리를 부각시킨 다음 곧이어 심벌즈 등으로 '쾅!'하는 기법은 재즈에서는 흔히 '브레이크(break)'라고 하던데, 클래식에서는 따로 용어가 있지는 않은 것 같음. (베를리오즈도 <파우스트의 겁벌>에서 파우스트가 지옥에 떨어지는 순간 메피스토펠레스가 "성공이다! Je suis vainqueur!" 할 때 이런 기법을 쓰고 있음.) 정명훈 판에서는 이 부분을 정말 잘 살렸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가수 성량도 문제고 연주회장 음향도 문제고 하여간 별로.
 
씨름 장면 이후 1막 3장으로 넘어가는 간주곡은 웬 푸가토가 나와서 좋아라 하는 부분인데, 이날 공연에서는 옆에 있던 하인들이 주인 갔다고 신나서 시끌벅적 하는 통에 한동안 음악이 제대로 안 들렸음. 조용해지고 나서는 연주 좋았음.

 
이것도 일부만 인용한 것 맞죠? ^^ 24일 공연 당일 녹음.

보리스 죽기 직전 대사인 "저년이오, 저년! Ona! Ona!"은 정명훈 판을 들어보면 '아놔! 아놔!' 처럼 들려서 들을 때마다 웃김. 언어심리학에서는 이런 걸 '음운 점화(phonetic priming)'라고 하는데, '니콜 키크드만' 같은 말장난도 이에 해당함. (참고: 독일 군가의 한국어 음운점화) 이날 공연에서는 발음이 정확한 거였는지는 몰라도 점화효과는 정명훈 판보다 약했음. ㅋ

 
"아놔! 아놔!" (c) 1993 DG. 음량은 김원철이 조정했음.

보리스가 귀신이 되어 나타났을 때에는 마이크를 썼는데 소리가 너무 커서 깜짝 놀랐음. <지프크리트>에서 파프너가 저래야 한다고 생각함. <지크프리트> 대본을 보면 "배경 깊숙한 어두운 곳에서부터 강력한 메가폰을 통해(durch ein starkes Sprachrohr) 파프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라는 지시가 있음. 실제 공연에서 보통 마이크를 쓰기는 하지만 소리를 그렇게 크게 하지는 않음.
 
3막 농부가 술주정하는 장면은 '허걱!' 마이크를 스탠드 채로 들고서 록 공연하는 시늉, 마이크에는 에코를 가득 걸고, 옆에는 전기 기타를 든 사람이 흔들고 있고, 백댄서들이 춤추고... 그런데 그게 의외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함.
 
마지막 장면은 연출과 음악 모두 참 멋졌음. 4막에 나오는 늙은 죄수의 극 중 역할이 특이한데, 죄수라기보다는 현자 같은 느낌. 마지막 합창의 분위기는 '탕녀 카테리나'가 아니라 '친절한 그레첸씨' 같음. 이에 대해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다음 글에서 좋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함:

"모두가 쉽게 인정하지 못했지만, 쇼스타코비치가 이 작품에서 진정으로 추구했던 바는 카테리나에 대한 면죄부였다. 사랑 앞에 선악의 판별조차 어그러진 그녀의 모습은 프로파간다와 선을 넘어선 정치의 폭력 앞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별하지 못하던 이성을 잃은 동시대인을 대변하고 있다." - 노승림, 공연 팜플렛 중.

2006년 9월 26일
김원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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