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2일 월요일

2010.01.28 김도윤 《디베르티멘토》 / 김정길 《올래, 오름, 그리고 백록담》 / 리게티 《라미피카시옹》 ― 이병욱 / TIMF앙상블

TIMF앙상블 ‘사통팔달[四通八達] 시리즈 1’ 《메타모르포젠》

2010년 1월 28일(목) 오후 8시 00분
호암아트홀

이병욱 지휘
TIMF 앙상블

김도윤 Doyun Kim, 《디베르티멘토》 Divertimento for 13 strings
펜데레츠키 K. Penderecki, 《샤콘느》 Chaconne
김정길 Chung-Gil Kim, 현악합주를 위한 《올래, 오름, 그리고 백록담》, TIMF앙상블 위촉
- 휴식 -
리게티 G. Ligeti, 《라미피카시옹》 Ramification (version for 12 solo strings)
R. 슈트라우스 R. Strauss, 《메타모르포젠》 Metamorphosen for 23 strings


※ 이 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공연예술창작기금지원사업으로 기획한 국민평가단 평가 자료를 겸하는 글이며, 평가서 항목에 맞추어 썼음을 밝힙니다.

▶ 공연작품의 예술적 수월성

TIMF 앙상블은 다른 악단과 견주어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했으며 연주회 프로그램도 매우 훌륭했다. 창작곡 또한 다른 공연에서 연주된 작품보다 예술적으로 훨씬 뛰어났다.

▶ 공연계획 실행의 충실성

호암아트홀이 현대음악과 어울리는 연주회장인지는 의심스러우나, 이날 프로그램은 호암아트홀 실내음향과 썩 잘 어울리는 작품으로 이루어졌다. 다만, 김도윤 작품은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처럼 잔향이 좀 더 짧은 곳에서 연주되었다면 느낌이 사뭇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창작곡은 전체 공연과 조화를 이루는 본격 현대음악이었다.

공연 시작에 앞서 TIMF 앙상블 예술감독 최우정이 연주회 해설 강연을 열었는데, 내용은 훌륭했으나 사전 공지가 없었고 연주회장 밖에서 어수선한 분위기로 진행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 공연성과 및 해당분야 발전에의 기여도

TIMF 앙상블은 본격 현대음악 전문 연주 단체로, 그것만으로도 예술위원회가 공연창작기금을 지원할 가치가 높다. 연주 실력 또한 매우 뛰어나고 창작곡 또한 훌륭하므로 지원 가치는 더욱 높다.

▶ 총평


※ 공연 관계자와 김원철의 친분 관계 요약

작곡가 김정길은 서울대학교 작곡과 교수였다가 퇴임했고, TIMF 앙상블 예술감독 최우정은 현재 같은 과 교수이며, 작곡가 김도윤은 같은 과 학생이다. 김원철은 같은 과 이론 전공 석사이나 이들과 개인적인 친분은 없으며, 이론 전공은 작곡 전공과는 사실상 학과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김도윤은 이날 처음 알았고, 최우정은 서로 얼굴 알아보고 인사할 만한 친분은 있으며 서울시향이 최우정에게 위촉한 첼로 협주곡 초연 리뷰를 김원철이 서울시향 월간지 『SPO』에 기고한 일도 있다. 김정길은 작곡과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컸으므로 그 사실만으로 김원철이 완벽하게 객관적인 평을 하지 못하리라 의심하더라도 반박하기 어렵다.

김도윤 《디베르티멘토》는 팸플릿에 있는 작품 설명이 어렵다. 그러나 음 소재를 조각내고 비틀어 음악을 이끌어 간다는 아이디어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멀리는 브람스나 베토벤까지도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요즘 작곡가 가운데에는 크리스 폴 하르만(Chris Paul Harman) 같은 사람도 김도윤과 닮은꼴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짜임새로 나타나는가이며, 무엇보다 이론적인 장난질에 그치지 않고 감상자에게 듣는 재미를 주느냐이다.

김도윤 《디베르티멘토》는 '듣기 좋은' 작품이었다. 현대음악인 만큼 아름다운 선율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음악치고 그다지 어렵지 않고 뭔가 엉뚱한 연주법을 쓰지도 않으면서도 어딘가 귀를 즐겁게 하는 곳이 있었는데, 좁은 공간에서 진동하는 듯한 화음 또는 음 덩어리(Cluster)가 조성감을 얼핏 드러내면서도 현대적인 긴장감을 이룬 대목이나 콘트라베이스가 피치카토 음형으로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흥미로운 (악보를 보면 생각보다 머리를 쥐어뜯게끔 하는) 리듬을 이끌어가며 만들어 내는 박진감 따위가 멋졌다. 무엇보다 작곡가가 '변주곡의 원리'를 말한 만큼 음 소재를 짜임새 있게 이끌어 가는 솜씨가 훌륭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작곡가가 1984년생이란다. 이 '어린놈'이 이토록 멋진 곡을 썼다니, 나는 질투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 이렇게 외쳐주었다. "브라보!"

고백하건대 나는 김정길 작품을 이날 처음 들었다. 현대음악에 거부감은 없으나 국내 작곡가 작품을 일부러 찾아 들을 정도는 아니다 보니 이름은 익히 들어온 작곡가라도 작품은 모르는 일이 더러 있다. 이날 연주된 《올래, 오름, 그리고 백록담》을 들어보니 김정길이 윤이상 제자였다는 사실이 곧바로 떠올랐다. 윤이상 수제자로 보통 호소카와 도시오(細川俊夫)를 꼽는데, 이제 보니 음악 양식만 따지자면 김정길이야말로 윤이상에게서 가장 많은 것을 물려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슈파러(Walter-Wolfgang Sparrer)를 비롯한 음악학자들은 윤이상 음악을 가리켜 "동양의 사상과 음악 기법을 서양음악 어법과 결합시켜 완벽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이며 "동아시아적인 것을 서구적인 것과, 국제적인 것을 자국적 전통과 융합시키면서 그 본질에 있어서는 한국적"이라 했다. 그러나 윤신향은 윤이상 음악이 동서양 음악의 융화가 아니라 "이주민 고유의 전통적 특색들이 서구 사회에 동화해가는 과정 속에서 변화하고 상실되는 원리가 윤이상에게도 적용"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두 세계 사이의 진정한 융화는 작곡자의 삶이 음악어휘를 결정할 때마다 그늘처럼 은폐되는 한국적 정신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그곳에서만 가능하다." (윤신향, 『윤이상, 경계선상의 음악』 파주: 한길사, 2005.)

윤이상 음악이 동서양 '융화'가 아니라 '동화'인 까닭은 음악을 이루는 두 세계가 대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정길 《올래, 오름, 그리고 백록담》은 화음과 장식음 따위가 윤이상과 닮은꼴이면서도 음계와 리듬 등에 한국적인 요소가 조금 늘어서 '두 세계' 사이가 좀 더 균형 잡힌 음악이었다. 20세기 서양음악사와 온몸으로 부대껴야 했던 윤이상과는 여러모로 처지가 달랐으리라.

리게티는 《라미피카시옹》(Ramification)에서 악단을 둘로 나누어 첫째 그룹이 표준 조율법보다 4분음 높게 연주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또한 둘이 섞여 있어서 안개처럼 흐릿한 소리가 되게끔 했는데, 리게티는 두 그룹이 따로 연습한 다음 마지막 연습 때에는 무대에서 따로 앉아 연주하고, 실제 공연에서는 섞여 앉도록 제안했다. 그런데 이날 TIMF 앙상블은 지휘자를 중심으로 두 그룹이 나뉘어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섞여 앉았다면 연주자끼리 서로 영향을 주면서 오히려 소리가 엉망이 될까 걱정한 탓이 아닐까 싶은데, 어쨌거나 '안개' 음향은 제법 그럴싸하게 살아나서 다행이었다.

전체적으로 연주는 매우 훌륭했으며, 딱 한 군데 아쉬웠던 곳을 말하자면 마디 101에서 콘트라베이스가 악보에서 지시한 만큼 '위협적이고 잔인하게'(minaccioso brutale) 연주하지 못한 대목이었다. 이곳에서 콘트라베이스는 활을 지판 쪽에서 매우 여리고 부드럽게 연주하다가 갑자기 매우 세게 ― ffff에서 ffffff로 크레셴도 ― 폭발하듯 박박 긁어대야 한다. 곧이어 활이 줄받침(bridge)과 지판을 오가며 꾸준히 음색을 바꾸면서 길게 연주해야 하는데, 마디 106에서 바이올린 하모닉스 음형이 더해질 때까지 다른 모든 악기는 침묵하면서 이 대목이 자연스럽게 곡 전체의 클라이맥스가 된다. 그러나 이날은 콘트라베이스 한 대로 이 대목을 연주하느라 음량이 크게 모자랐고, 그 한 사람이 온 힘을 다해 긁어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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