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일 수요일

2008.11.25. 베를리오즈 로마의 사육제 서곡 / 모차르트 플루트 협주곡 2번 K314 / 드보르자크 교향곡 6번 - 샤론 베잘리 / 조앤 팔레타 / 서울시향

2008년 11월 25일(화)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JoAnn Falletta
협연자 : Sharon Bezaly

Berlioz, Le carnaval romain Overture
Mozart, Flute Concerto No. 2 in D, K. 314
Dvorak, Symphony No. 6 in D, Op. 60



콘트라베이스는 다른 악기 뒤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느라 눈길을 많이 받지 못하는 악기다. 더군다나 옛날에는 제 선율을 갖지도 못하고 첼로 선율을 한 옥타브 밑에서 따라가면서 힘을 보태는 일만 하다가 베토벤이 처음으로 콘트라베이스에 따로 선율을 붙여주었다. 19세기 후반 즈음에는 드물게 콘트라베이스가 '주인공' 노릇을 하는 일도 생겼는데 베를리오즈 <로마의 사육제> 서곡이 바로 그렇다.

선율 구조와 관현악법 따위를 머리 아프게 따지는 대신 원작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에 기대어 쉽게 살펴보자. 사육제로 떠들썩한 광장에서 "재주꾼 보러 오세요! Venez voir l’habile homme!" 하면서 '나발'을 불며 눈길을 끄는 사람들이 있다. 이 재주꾼들이 묵직한 저음으로 노래하고 구경꾼들은 남녀노소로 재주꾼과는 음색이 뚜렷이 구분된다. 게다가 재주꾼이 "베네 봐, 베네 봐 Venez voir, Venez voir" 하는 말소리가 주는 느낌도 어딘가 묵직하다. <로마의 사육제> 서곡에서는 재주꾼이 부르는 노래가 주로 저음 현으로 나타나고 나머지 악기가 구경꾼 떠드는 소리로 주거니 받거니 한다.

서울시향의 연주는 제법 훌륭했으나 콘트라베이스가 '구경꾼' 떠드는 소리에 살짝 묻힌 점이 아쉬웠다. 그나마 마디 132 등에서 디미누엔도를 뚜렷하게 해주어 뒤이어 터져 나오는 '베네 봐' 하행 선율을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게 한 것은 좋았다. 그러나 마디 128에서 '쾅!' 할 때부터 다른 악기에 밀리지 않고 앞으로 튀어나오는 게 좋다고 본다. 카라얀은 아예 콘트라베이스를 맨 앞에 내세워 19세기 록 음악(?)처럼 다루지 않았던가!

플루트 연주자는 외모와 상관없이 모두 공주병 환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사람이 악기를 닮는다는 속설도 있거니와 플루트가 주는 느낌이 어딘가 '공주님스럽기' 때문이다. 모차르트 플루트 협주곡 2번을 협연한 샤론 베잘리는 인형처럼 예뻐서 더욱 공주님 같았으나 막상 연주를 들어보니 어째 말괄량이 같았다. 혀 튕기는 소리가 크고 비브라토 진폭이 커서 플루트다운(?) 맑고 은은한 소리를 해치곤 했다. 그러나 '공주님 환상'에서 깨고 나니 다른 게 보였다. 이 작품에 이렇게 다양한 표정을 담아낼 수 있다니! 실연이라 그런지도 모르지만 프레이즈마다 소리가 이리저리 바뀌는 것이 매우 또렷하게 느껴졌다. 악보에 없는 장식음도 쓰고 1악장 카덴차 앞뒤 트릴은 악보에 있는 음보다 한 옥타브 높게 연주하기도 했다. 카덴차에서는 마치 모차르트 자신이 플루트로 장난을 치는 듯했다. 그런가 하면 2악장 카덴차에서는 얌전 빼는 소리를 못 내는 게 아니라는 듯 은가루 똑똑 떨어지는 듯한 고운 소리를 자랑하기도 했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6번 연주는 모난 데 없이 깔끔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듣는 이를 홀리는 색다른 맛이 없고 평범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지휘자 조앤 팔레타는 2악장 템포를 느리게 잡은 것 빼고는 대부분 메트로놈 지시를 꼼꼼하게 지켰다. 그러나 현이 마르카토로 두터운 화음을 잇달아 연주하는 마디 498에서는 템포가 꽤 빨라서 화음이 주는 무거운 느낌에 비해 너무 서두른다 싶었으며 4악장을 시작할 때에는 더욱 그랬다.

3악장 시작할 때에는 5도 상행 음형을 되풀이하면서 살짝 아첼레란도를 쓰다가 이어지는 총주에서 원래 템포로 돌아가는 듯했는데, 크레셴도 지시와 맞물려 참신하기는 했지만 베를린필 같은 특급 악단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울 듯싶었으며, 서울시향은 아첼레란도를 썼는지 잠시 템포가 흐트러졌는지 헷갈렸고 살짝 어수선한 느낌도 들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멋있는 곳을 말하라면 나는 3악장 트리오에 나오는 피콜로 선율(마디 159)을 꼽겠다. 단순한 선율이지만 이보다 더 피콜로를 돋보이게 하는 곡이 또 있을까? 긴장감 넘치는 주요 주제와 뚜렷이 대비되고 가늘고 맑은 피콜로 음색이 더해져 마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환한 빛이 솟아나는 듯하다. 그런데 이날 피콜로 연주는 매우 아름다웠지만 템포가 갑자기 두 배나 느려져서 오히려 반짝반짝하는 느낌을 해치고 조금 유치해져 버려서 아쉬웠다. 눈치를 보아하니 피콜로 연주자가 하는 대로 지휘자가 맞춰준 듯한데, '조금 끌듯이 poco sostenuto'라는 지시어가 갑자기 템포를 두 배나 늦추라는 뜻은 아님을 되새길 일이다.

베를리오즈 <로마의 사육제>를 들으면서 마디 262에서 트럼펫 소리가 좀 더 컸으면 싶었는데, 드보르자크 교향곡 6번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트럼펫 파트가 튼튼하지 못한 듯했다. 특히 4악장에서 뒤로 갈수록 더해서 트롬본이 대신 빈자리를 메우느라 밸런스가 깨지곤 했다. 이것은 서울시향 개편 초기에 나타나던 문제인데 가만 보니 지난 정기연주회에서 돋보이던 트럼펫 수석이 자리에 없더라.

요즘 서울시향 객원지휘자로 '나이 어린 여자'와 '휠체어 탄 흑인' 등이 잇달아 나와서 재미있다. 그만큼 차별이 줄어든 탓일 텐데, 언젠가 마린 앨솝이 지휘하는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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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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