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일 화요일

2008.11.06. 모차르트 구도자의 엄숙한 저녁기도 / 말러 교향곡 4번 - 정명훈 / 서울시향

2008년 11월 6일(목)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Kate Royal(소프라노), 서은진(메조소프라노), 김종호(테너), 정록기(바리톤)
서울모테트합창단 (합창지도 : 박치용)

Mozart, Vesperae solennes de Confessore, K. 339
Mahler, Symphony No. 4 in G



요즘은 역사주의 바람이 현대 악기 연주에도 영향을 끼쳐서 베토벤 이전 작품을 연주할 때 악기 수를 줄이고 연주법에도 기름기를 빼는 게 대세다. 정명훈의 모차르트 <구도자의 엄숙한 저녁기도> 해석 또한 마찬가지였다. 서울시향은 투명하고 산뜻한 소리를 들려주었으며 템포는 빨랐다. 독창자들이 만들어낸 앙상블에서도 기름기를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안정된 화음이 나무랄 데 없었다. 소프라노 케이트 로열이 들려준 '라우다테 도미눔'은 이날 연주회장에 소문난 고음악 마니아들이 말러 마니아 못지않게 눈에 띈 까닭을 알 수 있게 했으며, 마디 63에서 F 음으로 시작하는 멜리스마(melisma)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합창도 훌륭했으며 연주가 끝나고 정명훈이 합창지휘자 박치용을 무대로 이끌고 나와 인사하게 하는 모습이 보기 흐뭇했다.

말러 교향곡 4번은 실내악을 닮은 짜임새가 돋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 안에 우주 삼라만상을 담고 있다. 악기 하나하나가 독주 악기처럼 제 목소리를 내면서도 그것이 모여 대립하고 상생하며 함께(sym) 울리는(phony) 것이 말러 작품 가운데서도 특히 교향곡 4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것을 소리로 풀어내는 일이 지휘자에게나 오케스트라에나 쉽지 않은 일인데 이번 연주회에서는 정명훈의 중용적인 해석과 서울시향의 뛰어난 앙상블이 만나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1악장에서 목관 악기가 아기자기한 음형을 주고받는 마디 58에서 앙상블이 특히 좋았고 호른도 큰 실수 없이 잘했다. 마디 224에 나오는 이른바 '작은 나팔소리'를 연주한 트럼펫이 매우 멋있었는데 누군가 했더니 시향 트럼펫 수석 Gareth Flowers더라. 코다로 넘어가기 바로 앞선 마디 330 이후 현악기가 내는 여리고 투명한 소리가 매우 아름다웠으며 폭이 매우 큰 아첼레란도를 거쳐 마지막 총주로 이어질 때도 훌륭했다. '천상의 삶' 주제가 나타나는 마디 125에서는 악보대로 플루트 네 대가 같은 선율을 연주하는지 조금은 짓궂은 마음으로 따져 봤는데 악보대로 했을 뿐 아니라 마치 악기가 하나인 것처럼 잘 맞았다. 클라리넷 또한 나팔을 위로 들어 올리라는 지시를 꼼꼼히 지켰다. 재현부에서 '천상의 삶' 주제가 나오는 마디 251에서 심벌즈 소리가 너무 커서 트라이앵글 소리가 묻혀버린 일은 조금 아쉬웠다.

2악장에서는 솔로 바이올린을 온음 높게 조율하여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게 재미있으며 이때 마디 7 등에서 F# 음을 개방현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이날 악장을 맡은 데니스 김은 F# 음을 개방현으로 연주하지 않고 오히려 메사디보체(messa di voce)로 부드럽게 연주했는데, 말러가 일부러 듣기 싫으라고 비틀어놓은 음표를 억지로 듣기 좋게 만든 꼴이라 갸우뚱했다. 마디 78에 나오는 오보에 선율은 4악장에 나오는 '아이들은 천국의 음악가라네! (Cäcilia mit ihren) Verwandten sind treffliche Hofmusikanten!' 선율에서 따온 것이다. 여기서 성악과 오보에 느낌 모두를 살리려면 레가토와 스타카토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추어야 하는데 이날 연주는 나무랄 데 없었다. 마디 102와 마디 246 등에서는 콘트라베이스가 리듬을 좀 더 뚜렷하게 살렸으면 싶었다. 특히 마디 274에는 '또렷하게 deutlich!'라는 지시어까지 붙어 있지만 이날 연주는 굼뜨게 들렸다.

3악장은 셈여림 기호가 pppp까지 여려지는 마디 338에서 투명한 현 소리가 매우 아름다웠으며 몹시 느린 템포가 어우러져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마디 73-75에서는 ppp에서 ff로 가파르게 치솟는 크레셴도가 제법 훌륭했으나 마디 75로 넘어갈 때 글리산도를 좀 더 또렷하게 살렸으면 싶었고 마지막 E 음에서 활을 살짝 끊어 연주한 점은 옥에 티였다. 이른바 '천국의 문'이 열리기 바로 앞선 마디 303부터 매우 여린 소리로 마치 문을 두드리듯 또는 종을 치듯 하는 부분도 제법 멋졌다. 현악기와 관악기가 두터운 화음으로 균형잡힌 소리를 내면 때때로 합창 소리를 닮은 신비로운 음향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바로 이 부분이 그렇다. 이날 연주에서는 '합창 소리'가 들릴락말락 해서 조금은 아쉬웠고 비올라와 첼로 소리가 아주 조금만 더 컸으면 싶었다.

4악장에서 소프라노 케이트 로열은 음색이 살짝 어둡고 '흐' 하는 헛바람 소리가 섞여 나와서 첫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목소리에 나타나는 표정이 매우 풍부한 점은 마음에 쏙 들었다. 4절에서 여리고 부드럽게 부르는 이른바 소토보체(sotto voce)가 썩 훌륭했으나 그 가운데 절정이라 할 수 있는 "만물이 깨어 기쁨으로 가득하네. Dass Alles für Freuden erwacht."(마디 169)에서는 소리가 살짝 커져서 아쉬웠다. 말러는 pp 표시를 해놓고는 괄호를 씌워놓았는데, 낮은 음역까지 소화하는 가수가 매우 여리게 부르기에는 너무 높은 음이라 쉽지 않은 모양이다.

연주가 조용히 끝나고 여운을 살리는 '침묵 악장' 또한 훌륭했다. 잔향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도 지휘자는 20초 가까이 지휘봉을 내리지 않았고 관객 또한 그 '지시'를 매우 잘 지켰다.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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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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