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2일 토요일

2007.04.06. 윤이상 '융단' / 브루흐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협주곡 Op. 88 / 슈만 교향곡 4번 - 스코트 유 / 서울시향

2007년 4월 6일(금) 오후 8시
LG 아트센터
    
지휘자 : Scott Yoo
협연자 : Dennis Kim (vn), Hung-Wei Hwang (va)

Isang Yun: Tapis (8')
Bruch: Concerto for Violin and Viola, Op. 88 (19')
Schumann: Symphony No.4 in d minor, Op.120 (25')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이 독일 음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축구 선수 차범근에 비할 만하다. 그는 이른바 '클러스터(cluster)' 기법을 사용한 '음향음악(Klangkomposition)' 작곡가로서 리게티, 펜데레츠키 등의 당대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현대음악의 시류에 맞으면서도 동아시아의 음악적 전통을 바탕으로 하는 양식적 독자성을 크게 인정받았다. '주요음(Hauptton)' 또는 '주요음향(Hauptklang)' 기법 등의 용어로 설명되는 그의 음악 양식은 유럽 작곡가들의 클러스터 기법과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면서도 그 짜임새에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윤이상은 "유럽 음악에서 음 하나하나는 추상적이며, 음들의 연속이 비로소 의미를 획득한다. 그러나 우리 음악에서는 '음' 그 자체에 이미 고유한 의미가 있다."라고 지적했으며, 이것을 펜 글씨와 붓글씨의 차이에 비유하기도 했다. 윤이상의 음악에서 '주요음', 또는 몇 개의 음이 결합한 '주요음향'은 한국의 전통 음악과 유사한 원리로 유연하게 흐르듯이 변화하며, 이때 트릴, 장식음, 글리산도 등의 서양음악의 어법이 사용된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음악 양식이 윤이상에 의해 당대의 유럽 사정에 맞게 '번역'된 결과이며, 그의 음악은 동양적이기는 하나 엄연히 서양음악에 속한다.

윤이상의 음악은 1975/76년을 기점으로 전환점을 맞았는데, 1967년 간첩 혐의로 한국 정부에 의해 납치되었다가 외교적 압력에 의해 풀려나는 경험과 그로 말미암은 육체적, 정신적 후유증이 그러한 변화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 뒤로 그는 타계할 때까지 고국 땅을 밟을 수 없었으며, 타계 후 12년이 지난 2006년에 이르러서야 국정원 진실위의 과거사 규명으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음악에 정치적인, 또는 인류애적인 메시지를 담기 시작했으며, 메시지 전달이 용이하도록 양식적으로 좀 더 유연한 음악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음악학자 홍은미의 말을 빌리자면 "그 이전의 엄격하고 복잡한 음악구조가 차츰 완화되어 그 직조과정에서 개별음들의 화성관계가 보다 부드럽고 명료하게 처리"되었다.

<융단 Tapis pour cordes>은 1987년 작품으로,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제2 창작기의 작품답게 현대음악치고는 상당히 듣기 쉽다. 곡 첫머리에 등장하는 단3도 상행 모티프가 지속적으로 활용되었으며 또한 이것이 명확하게 지각된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음향음악적 특성 또한 여전히 나타나는데, 그 음향이 생장하고 변화하는 양상은 작품 제목인 '융단'의 느낌과 매우 그럴싸하게 닮았다. 특히 이날 연주된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은 날실과 씨실이 얽히는 느낌보다는 실의 양태를 벗어난 완성된 천의 느낌이 강했다. 지휘자 스코트 유(Scott Yoo)는 작품의 핵심이 되는 음향을 상당히 안정감 있게 살려 서울시향의 평소 실력을 상회하는 연주를 이끌어내었으며, 다소 아담한 크기의 LG 아트센터는 이런 소편성 작품도 소리를 섬세하게 전달해주었다.

브루흐의 <이중 협주곡 Op.88>은 서울시향의 간판급 단원인 데니스 김(악장)과 헝웨이 황(비올라 수석)의 독주자로서의 기량을 뽐내기에 좋은 작품이었다. 음을 끄는 듯 살짝 기름진 데니스 김의 연주와 빈틈없이 야무진 헝웨이 황의 연주가 흥미로운 대비를 이루었으며, 그러면서도 호흡은 썩 잘 맞아서 두 가지 음색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다. 다소 느린 듯한 템포로 그윽한 향취가 묻어난 것은 좋았는데, 다만 템포를 풀고 조임이 너무 무른 감이 있어서 지루한 느낌이 든 것은 옥에 티였다. 앙코르로 헨델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모음곡 7번 G 단조 중에서 파사칼리아(J. Halvorsen 편곡)를 연주하여 관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슈만의 교향곡 4번은 커다란 정서적 기복과 현장의 열기로 승부를 겨루기보다는 매끄럽게 다듬어진 앙상블과 계산된 음악적 연출로 클라이맥스를 향해 완만한 템포로 한 걸음씩 꾸준히 나아가는 스타일이었다. 지휘자 스코트 유는 청중의 귀를 현혹하는 트릭을 쓰거나 하지는 않아서 다소 고지식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작년 초에 같은 곡을 지휘했던 구자범이 이를테면 2악장 독주 바이올린 사이의 짧은 경과구(마디 34-38) 부분에서 트럼본의 음량을 최대한 줄여 영화적인 화면 전환 효과를 노린다거나, 4악장 마디 243 이후 등에서 금관에 의한 두터운 화성과 점층 효과를 과장한다거나 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것은 안정된 앙상블을 구현하는 힘이 되었으나 한편으로는 거시적인 추진력을 위해 세부를 희생시켜 다소 지루한 느낌을 주는 단점도 있었다. 특히 금관의 음량을 지나치게 억제하여 전체적인 다이내믹을 손실시킨 것이 양날의 칼처럼 작용했는데, 이를테면 1악장 마디 122에서 모든 악기가 포르티시모로 연주해야 하는데도 금관이 뒤로 숨어버린 것이나 4악장 마디 291 이후의 호른과 트럼펫의 음량이 너무 작아서 목관과 금관의 강약 대비를 살리지 못한 것 등은 수긍하기 어려웠다.

앙코르는 베토벤의 로망스 2번 F 장조 Op.50을 연주했다. 지휘자 스코트 유가 직접 연주한 바이올린 솔로는 작품 특성 때문인지 서늘하거나 찬란하지 않은 대신에 부드럽고 따스한 광택을 뽐냈으며, 활이 바이올린 줄에 쫄깃하게 붙으면서도 소리가 거칠지 않고 미끈했다. 이것은 본 프로그램의 연주와도 일맥상통하는 특징이었는데, 어쩌면 지휘자의 성격도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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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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