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2일 수요일

라벨: 쿠프랭의 무덤

예전에 썼던 글 ☞ 「쿠프랭의 무덤과 고구려의 무덤」의 일부를 따와서 조금 고친 글입니다. 2023. 4. 추가: 영문 번역


라벨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공군에 자원입대하려다 실패하고는 운전병으로 입대해서 군용 화물 트럭을 운전했다. 라벨이 배치된 곳은 끔찍하기로 유명했던 베르됭 전투의 최전방 바로 뒤에 있는 곳이었다. 독일군과 프랑스군을 합쳐 무려 240만 명 가까운 군인들이 동원되었고, 양측의 소모전으로 사상자가 80만 명 가까이 되었다. 한 프랑스 군인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지옥도 이보다 더 참혹할 수는 없다. 여기에 있는 우리는 모두 미쳤다.”

어느 날 라벨은 폐허가 된 마을에 버려진 성에서 에라르 피아노를 발견하고는 쇼팽 곡을 연주해 보았다. 음악평론가 알렉스 로스가 지적한 것처럼, 라벨은 적막한 폐허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경험으로 ‹쿠프랭의 무덤›을 작곡하게 되었던 것 같다. 아름다운 음악이 만들어내는 환상이 폐허로 변한 현실에 덧씌워지는 것은 ‹쿠프랭의 무덤›이라는 작품이 주는 느낌 바로 그것이다. 알렉스 로스는 또한 이렇게 썼다:

“그러나 라벨 음악이 항상 그렇듯이, 아름답게 세공된 표면 아래에서는 감정이 타들어 간다. 각 악장은 전투에서 사망한 벗들에게 헌정되었다. 고풍스러운 양식으로 흘러가는 음악은 마치 유령의 행진처럼 느껴진다. 근육에 대한 암시와 금속의 번뜩임에 대한 암시도 있다. 글렌 왓킨스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의 음악에 관한 연구에서, 라벨이 토카타 악장의 카랑카랑한 음으로 전투기의 곡예비행을 연상시키려 했다고 주장했다. 라벨은 창공을 홀로 비행하는 영웅이 되기를 꿈꿨다.”

‹쿠프랭의 무덤›이라는 제목은 바로크 시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 프랑수아 쿠프랭(François Couperin)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작품의 선율과 리듬과 화성 등은 바로크 시대의 우아함을 간직하면서도 어딘가 조금씩 비틀려 있고, 때로는 음산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알렉스 로스가 말한 것처럼, “고풍스러운 양식으로 흘러가는 음악은 마치 유령의 행진처럼 느껴진다.”

이 작품의 악장 구성은 바로크 시대 모음곡과 비슷하면서도 진짜 바로크 시대의 표준에서는 벗어나 있다. 이를테면 바흐 모음곡의 악장 구성이 ① 전주곡 ② 알르망드 ③ 쿠랑트 ④ 사라방드, ⑤ 가보트·미뉴에트·부레 등 ⑥ 지그 순서라면, ’쿠프랭의 무덤’은 ① 전주곡 ② 푸가 ③ 포를랑 ④ 리고동 ⑤ 미뉴에트 ⑥ 토카타 순으로 되어 있다.

M. Ravel: Le Tombeau de Couperin

Ravel endeavored to join the air force during World War I but was unsuccessful, thus serving as a truck driver, transporting military cargo. His station was positioned just behind the frontline of the infamous Battle of Verdun, where nearly 2.4 million soldiers from both the German and French sides were mobilized, resulting in casualties approaching 800,000 due to attrition. A French soldier expressed in his diary, “I cannot find words to convey my impressions. Hell cannot be so terrible. Men are mad!”

One day, Ravel stumbled upon an Érard piano in an abandoned castle within the ruined village and attempted to play Chopin’s compositions. As noted by music critic Alex Ross, Ravel appeared to draw inspiration for ‹Le Tombeau de Couperin› from his experience playing the piano amidst the silent ruins. The juxtaposition of the beautiful music against the backdrop of devastation encapsulates the essence of ‹Le Tombeau de Couperin›. Alex Ross elaborated:

“But, as ever with Ravel, emotion smolders under the exquisite surface. Each piece is dedicated to a friend who died in battle; the old styles pass by like a procession of ghosts. There are also hints of muscle, glints of steel. Glenn Watkins, in his study of music during the Great War, argues that the metallic stream of tone in the Toccata is meant to suggest the twisting motion of a fighter plane. Ravel dreamed of being an aviator, a solitary hero in the sky.”

The title ‹Le Tombeau de Couperin› pays homage to François Couperin, a prominent composer of the French Baroque era. The melody, rhythm, and harmony of this work maintain the elegance of the Baroque period while incorporating some twisted elements, occasionally delving into melancholic territories. As Alex Ross observed, “the old styles pass by like a procession of ghosts.”

The structural composition of this piece resembles Baroque suites but diverges from traditional Baroque standards. For instance, while a Bach suite typically comprises a Prelude, Allemande, Courante, Sarabande, Gavotte·Menuet·Bourree, and Gigue, ‹Le Tombeau de Couperin› is structured with a Prelude, Fugue, Forlane, Rigaudon, Menuet, and Tocc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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