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르지팔›을 발췌 연주하면 보통 관현악곡이거나 구르네만츠 역 베이스 정도가 나오는 게 보통인데, 이번 연주회는 구르네만츠가 아닌 암포르타스가 나온 점이 특이하고 신박했음. 사무엘 윤 선생이 협연자인 걸 보고 속으로 '저분이 구르네만츠 테크 트리가 아닌데 이게 뭐지?' 했다가 암포르타스인 걸 보고 이거구나 싶었음.
-
막판에 사무엘 윤 선생이 퇴장했다가 합창석으로 재등장하더니 잠시 파르지팔에 빙의. 베이스바리톤이 파르지팔 대사를 치는 진풍경은 나름 참신했음.
-
암포르타스가 돋보였다는 점에서 작년에 뮌헨에서 봤던 공연 생각도 났음. 크리스티안 게르하허의 암포르타스가 '인간의 고통'을 절절하게 보여줬다면, 사무엘 윤의 암포르타스는 '영웅의 고통'에 가까웠음. 둘 다 좋았지만, 영웅의 카리스마가 '고통'을 살짝 가리는 느낌이 있었던 것은 단점.
-
오페라를 발췌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이 이어지도록 편곡을 잘했음. 그 과정에서 시간 순서가 좀 왔다리갔다리 했지만 위화감이 느껴지기보다 그냥 신박하다는 느낌. 나님 예전에 경기필에 있었을 때 바그너 공연 준비하면서, 지휘자 선생님이 ‹로엔그린› 마지막이 '끝나는 느낌'이 약하다고 고민하시는 걸 보고 차라리 1막 피날레로 점프하자고 제안했던 생각도 났음. '그렇게 하면 바그네리안들이 욕하지 않을까요?'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장담합니다!'
-
'종소리'는 '공'을 포함한 몇 가지 악기를 조합해 만들어내는 듯했는데 객석에서 제대로 안 보였음. 종소리 이슈는 ‹파르지팔› 초연 때부터 문제가 됐던 것으로, 핵심은 작곡가가 교회 종소리를 의도했으나 진짜 교회종을 쓰면 오케스트라와 안 어울린다는 것. 가장 흔한 해결책은 베이스튜뷸라벨인데, 서울시향이 갖고 있는 베이스튜뷸라벨은 3음짜리로 이걸로는 안 됨. ‹파르지팔›이 되는 4음짜리 베이스튜뷸라벨은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갖고 있는데 이걸 빌려다 썼으면 좋았을 듯. 이번 공연에서는 음색이 탁하게 들렸던 것이 단점.
-
파르지팔과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엮은 프로그램 마음에 들었음. 인간이 자신의 격을 뛰어넘어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음악이라는 공통점. 서울시향의 베토벤 연주는 기법적으로 역사주의를 일부 수용한 듯했지만, 그런 것치고는 현악기가 너무 대편성이었음. 관악기는 호른 한 대 더블링한 것 빼고는 원래 편성 그대로. 현이 비대하니 4악장 후반부의 고양감을 살리는 건 좋았으나, 이를테면 1악장 발전부 클라이맥스에 나오는 충격적인 플루트 불협화음이 현 음량에 맞춘 트럼펫 소리에 묻혀서 어정쩡하게 들린다거나, 푸가토의 텍스처가 흐리멍덩하게 들린다거나 하는 문제가 있었음. 현악기 배치는 1바-2바를 좌우로 갈라놓은 걸 넘어서 첼로와 더블베이스까지 좌우대칭으로 쪼개 놓고 비올라를 정중앙으로. 이걸로 뭘 의도했는지 알쏭달쏭한데 결과적으로 특히 첼로 쪽에서 만득이 소리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