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테너 안드레아스 샤거를 보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엄청난 성량과 강력한 고음을 자랑하면서도 카랑카랑한 소리가 아닌 맑고 고운 목소리를 가진 테너였지요. 리듬감에 문제가 있는 것만 빼면 전설적인 바그너 테너로 성장할 만한 가수였습니다. 말러 '대지의 노래'를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난 2016년 루체른 페스티벌에 갔다가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8번을 듣고서 제가 썼던 글입니다. 그리고 올 7월에는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에 가서 안드레아스 샤거의 노래를 다시 한번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은 다름 아닌 말러 '대지의 노래'였고, 잉고 메츠마허가 지휘한 파리 오케스트라 협연이었습니다.
'대지의 노래'는 가곡집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교향곡으로 분류되는 작품입니다.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올 만큼 엄청난 성량과 살인적인 고음을 요구하는 까닭에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가수를 찾기 힘든 작품이기도 하지요. 말러 교향곡 8번도 테너가 쉽게 부를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대지의 노래는 그보다 훨씬 부르기 어려운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샤거가 부르는 '대지의 노래'를 듣고 싶었던 까닭이 그래서였지요.
3년 만에 다시 본 안드레아스 샤거는 역시 대단했습니다. 특히 첫 곡인 '현세의 고통에 관한 술 노래'(Das Trinklied von Jammer der Erde)에서 샤거의 무시무시한 고음이 오케스트라의 절규를 뚫고 나올 때마다 전율이 일었습니다. 다만, 리듬감에 문제가 있는 아쉬움은 3년 전과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더군요. 바그너 오페라보다 말러 교향곡에서 리듬 처리의 단점이 더 뚜렷이 드러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세계적인 바그너 가수 사무엘 윤 선생이 예전에 해준 말에 따르면, 안드레아스 샤거는 모차르트 오페라처럼 자신의 단점이 두드러지는 작품의 조연 및 단역을 전전하며 오랜 무명 시절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사무엘 윤이 소속된 기획사의 귀 밝은 매니저가 안드레아스 샤거의 가능성을 알아보았고, 샤거는 이후 바그너 가수로 전향하면서 전 세계 오페라 극장이 주목하는 바그너 가수가 되었다고 하지요.
샤거의 또 다른 단점 하나는 심각한 내용을 노래할 때 연기에 서툴다는 것입니다. 오스트리아 시골 마을에서 자란 탓인지, 그는 진지해야 할 곳에서 순박한 웃음을 곧잘 드러내 버리더군요. 루체른에서 말러 교향곡 8번을 부를 때에는, 암울한 분위기로 가득한 가운데 테너가 마치 선지자처럼 작은 희망을 담아 '빛이여!'(Lumen!)하는 바로 그 순간 '헤~' 하는 표정으로 웃어버리는 바람에 분위기를 깨기도 했습니다. 그때와 견주면 이번 공연에서는 훨씬 나았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단점을 길게 쓰고 말았지만, 안드레아스 샤거는 압도적으로 밝고 강렬하게 빛나는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참 훌륭한 가수입니다. 현재 활동하는 테너 가운데 '대지의 노래'를 이보다 더 잘 부를 사람이 아마 없을 거예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통영에 초청하고 싶습니다.
샤거와 함께 출연한 소프라노 사라 코놀리는 바로크 음악에 강점이 있지만 바그너 오페라도 곧잘 하는 세계 정상급 가수입니다. 이날 공연도 매우 훌륭했는데, 다만 안드레아스 샤거와 달리 뚜렷이 드러나는 단점이 없으면서도 세계 정상급 실력까지는 아닌 듯해서 좀 갸우뚱하더군요. 저는 음반이 아닌 실연으로는 코놀리의 노래를 처음 듣고서 이게 본 실력인가 싶어 조금 실망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에 코놀리가 유방암 수술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안타깝게도 이날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두서없이 쓰다 보니 다른 얘기는 다음에 해야 할 듯합니다. 잉고 메츠마허가 지휘한 파리 오케스트라는 훌륭했고, 이날 공연 전반부에서 프랑스 초연된 볼프강 림의 ‹Über die Linie VIII›(선을 넘어서 八)도 멋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