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향숙의 'SOLOS'는 마치 여러 가지 화면을 빠르고 어지럽게 교차시키는 영상 기법처럼 여러 음형이 다층적으로 얽히며 변화하는 모습이 신기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작품 자체보다는 그 복잡한 음형들을 연주해 내는 피아니스트에게 감탄하게 되더군요. 피아니스트 단 한 사람이 어찌나 많은 음을 폭포처럼 쏟아내는지, 또 그런 가운데 수많은 변화를 어찌나 정교하게 담아내는지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지요. 피아니스트 이름은 지유경이었습니다."
지난 2017년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주간'에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렸던 이 공연을 기억하시는 분도 있을 듯합니다. 인용한 글은 그때 한산신문에 썼던 것인데요, 세계초연된 작품들 위주로 썼던 글에서 유일하게 연주자를 언급한 대목이기도 하지요. 그때 지유경 씨 연주를 들으면서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통영 공연 직후에 지유경 씨는 독일에서 첫 음반을 녹음했습니다. 그리고 지난여름에 독일 음반사 게누인(GENUIN)에서 '리플렉션'(Reflections)이라는 제목으로 음반이 발매됐지요. 저는 이걸 언제 한 번 들어 봐야지 하고 그동안 생각만 하다가 며칠 전에 뒤늦게 들어 봤습니다. 그리고 여러 차례 감탄하던 끝에 이 지면을 빌어 감상을 조금 써보려고 합니다. 통영 공연에서 연주했던 작품이 음반에 두 곡이나 있고, 통영 공연 못지않게 훌륭한 연주이기도 하거든요.
이 음반은 첫 곡부터 차례로 듣기보다 마지막 곡부터 거꾸로 듣기를 추천합니다. 지유경은 현대음악 전문 피아니스트이고, 통영 공연이 그랬던 것처럼 이 음반 또한 현대음악 위주라서 이런 음악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자칫 첫 곡에서부터 흥미를 잃기 쉬울 듯해요. 또 이 음반에서는 최신 녹음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엄청난 음질에도 주목하시면 좋습니다. 음반 구성이 현대음악 위주인 까닭에 탁월한 음질이 더욱 짜릿한 '오디오적 쾌감'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통영 공연의 마지막 곡이자 이 음반의 마지막 곡인 메시앙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 중 제6곡 '모든 것은 그분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이 음반의 매력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곡입니다. 마치 총천연색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알갱이들이 방안 이곳저곳을 통통 튀어 다니는 듯한 환상적인 음향이 매력적인 작품이고, 탱글탱글한 음들의 현란한 움직임을 기막히게 표현한 지유경의 연주와 고음부터 저음까지 '고막이 쫄깃해지는' 소리를 기막히게 잡아낸 녹음 기술이 '삼위일체'를 이루어 듣는 이를 음향적 법열의 세계로 이끄는 놀라운 음악입니다.
라벨의 '거울'(Miroirs)은 이 음반의 수록곡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 가운데 제5곡 '골짜기의 종'(La vallée des cloches)은 지유경이 통영 공연에서 앙코르로 연주한 곡입니다. 제4곡 '어릿광대의 아침 노래'(Alborada del gracioso)는 신나는 에스파냐풍 리듬과 선율로 유명한 곡인데, 메시앙 곡에서 시각적 현란함이 매력적이라면 이 곡에서는 선율과 리듬의 속도감과 운동감,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터트리는 '펀치감'(?)이 강렬한 '오디오적 쾌감'을 줍니다.
다케미쓰 '먼 곳을'(For Away)은 통영 공연의 첫 곡이었지요. 작곡가는 이 작품이 '생명의 은하'(Galaxy of Life)를 향한 찬양과 봉헌의 표현이라 했고, 은하는 인류만의 것이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우주 저편의 생명체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을 거라고 말하는 듯한 이 작품은 그래서 '음악적 SF'인 동시에 '음악적 설법'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음반에서는 음과 음 사이의 잔향이 만들어내는 음향 효과가 망망우주(茫茫宇宙) 느낌을 주는 동시에 묘하게 명상적이기도 합니다.
최우정 전주곡 7번과 25번은 다양한 음악 양식이 공존하고 상생하는 작곡가 최우정의 음악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현대음악에 대한 선입견만 없다면 의외로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첫 곡인 베르톨트 훔멜 '3개의 소품'은 '알반 베르크 오마주'라는 부제가 시사하는 것처럼 본격 12음 음악입니다. 현대음악 마니아가 아니라면 이 곡은 일단 건너뛰시는 것도 좋을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