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햇살이 따사로운 가을날이었습니다. 윤이상 선생의 기일을 맞이해 많은 사람이 추모지로 모였습니다. 윤이상 선생의 유해가 고향 통영으로 돌아오고서 첫 번째로 맞는 기일이었고, 그래서 더욱 뜻깊은 자리였지요. 추모식 분위기는 대체로 밝았습니다.
이날은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결선이 있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콩쿠르 때 개인적으로 응원했던 참가자 2명 가운데 한 명이 결선에 진출한 참이었지요. 결선에 진출하면 윤이상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기로 했던 리처드 내러웨이가 본선 2차에서 안타깝게 탈락했지만, 본선에서 가장 인상 깊은 윤이상 연주를 들려주었던 이상은이 결선에서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을 연주했습니다.
이번 콩쿠르부터는 경연 실황을 인터넷 생중계했습니다. 저는 생중계 방송 자막을 실시간으로 감수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백스테이지 스피커에서 나는 조악한 소리로 연주를 들어야 했습니다. 행사 진행을 위한 다양한 말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는 까닭에 그나마 음악 소리가 잘 안 들리기도 했지요. 본선 1차까지는 얼핏 들어도 몇몇 참가자의 연주에서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이 어설픈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본선 2차부터는 백스테이지에서 연주의 수준을 판단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더군요.
그래서였을 겁니다. 결선 진출자 가운데 두 명은 백스테이지 스피커로만 들었을 때는 어떻게 결선까지 갔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작품 해석이 제 취향에 맞지 않았을 뿐 객관적으로는 훌륭한 연주라는 사실을 결선 전날 리허설을 콘서트홀 안에서 듣고서야 이해하게 됐지요. 둘 가운데 한 사람은 3위 및 유네스코 음악 창의도시 특별상을 받은 레프 십코프였고, 다른 한 사람은 무려 공동 1위를 했던 이정현이었습니다.
이정현 씨와 함께 공동 1위에 입상한 이상은 씨는 본선 때 백스테이지에서 나는 소리로도 참 대단한 윤이상 연주를 들려주었던 참가자입니다. 본선 2차 때 연주한 ‹공간 I›(Espace I)도 훌륭했지만, 본선 1차 때 연주한 ‹활주›(Glissées)가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비브라토를 할 때 진폭이 유연하게 변화하는 것이 서양식 비브라토보다 한국 전통 '농현'에 가깝더라고요. 예전에 거문고나 가야금을 배운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지요!
서양음악에서 개별음은 고정되어 있어 다른 음과 관계를 맺으면서 음악적 의미가 만들어지는 반면, 동아시아 음악에서는 개별음이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며 음악적 소우주를 이루지요. 윤이상 선생이 이 차이를 붓글씨와 펜글씨의 차이에 비유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많이들 아실 겁니다. 윤이상 선생은 동아시아 음악의 '살아있는 음'을 서양음악의 틀 안으로 옮겨 오려고 다양한 장식음과 글리산도 등을 사용했는데, 이때 비브라토마저도 '살아있게' 하는 일은 대개 연주자 스스로 해야 할 일입니다.
서양 연주자들은 이런 감각을 갖고 있지 않지요. 윤이상 선생과 깊은 친분을 유지했던 몇몇 연주자는 조금 다르지만, 한국인인 제가 듣기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조금씩은 있습니다. 또 한국인 연주자라 하더라도 서양악기만을 연주해 온 사람은 대개 서양 연주자와 딱히 다르지 않더군요. 악보에 구체적인 지시가 없는 '살아있는 비브라토'를 표현해 낸 이상은 씨는 이런 점에서 특별합니다. 예전부터 윤이상 해석에 탁월함을 보여 온 첼리스트 고봉인 씨 이후 가장 주목할 만한 연주자가 아닐까 해요.
서양음악을 연주할 때에도 이상은 씨는 훌륭했습니다. 사실 결선 때 자잘한 실수가 좀 있어서 1등까지 할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공동 1위를 하는 것을 보고 기뻤습니다. 물론 안정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던 이정현 씨도 훌륭했지만, 윤이상 곡을 더 훌륭하게 연주한 이상은 씨가 저는 참 마음에 드네요. '올해의 윤이상 연주자'라 부를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