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통영국제음악재단에 입사할 때, 저는 이력서에 현대음악 축제로 유명한 '다름슈타트 여름 현대음악 강좌'에 갔던 일이 있다고 썼습니다. 통영국제음악제에서 현대음악이 자주 연주된다는 사실이 중요한 입사 지원 동기였거든요. 면접관 가운데 한 분이 그 얘기를 좀 더 해보라 하셔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현대음악 마니아는 아니지만, 열린 마음으로 현대음악을 들으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시리즈인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와 TIMF앙상블의 현대음악 공연에 자주 가서 실연을 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럽의 현대음악 연주 수준이 우리와는 얼마만큼 차이가 나는지, 일류 현대음악 단체가 연주할 때는 어떤 느낌인지 확인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독일 다름슈타트에 갔을 때, 제가 경험한 웬만한 연주는 서울시향이나 TIMF앙상블과 견주어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 현대음악 연주 수준이 그만큼 높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세계 정상급 현대음악 연주단체인 앙상블 모데른(Ensemble Modern)과 아르디티 콰르텟(Arditti Quartet)의 연주는 달랐습니다.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연주를 들려주더군요.
독일에 앙상블 모데른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Ensemble InterContemporain)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으뜸가는 현대음악 연주단체로 베를린필이나 빈필에 비유할 만하지요. 제가 지난 1월 피에르 불레즈를 추모하며 『한산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을 소개한 일이 있습니다.
"불레즈는 예술행정가로서도 커다란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프랑스 음악계가 너무나 보수적이라고 생각했기에 '자발적인 망명'으로 독일과 미국 등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그런 그를 프랑스로 돌아오게끔 한 것은 프랑스 정부의 어마어마한 경제적 · 행정적 지원이었습니다. 조르주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이 전권을 위임하겠다며 불레즈를 설득했다고 하지요.
그래서 그는 현대음악 역사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칠 두 단체를 만들어 이끌게 됩니다. 퐁피두 센터 산하 음악 · 음향 연구 기관이자 전자음악의 아이콘으로 평가받는 이르캄(IRCAM),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현대음악 연주단체로 평가받는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Ensemble InterContemporain)입니다."
10월 28일,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이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공연합니다. 섭외 과정에서 플로리안 리임 대표님께서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예고하는 의미로 윤이상 곡을 프로그램에 꼭 넣기를 바라셨고, 저는 편성과 연주 시간 등을 고려해 몇 곡을 건의했습니다. 그리고 대표님께서 제 의견을 그대로 앙상블 측에 전달해서 선택된 곡이 《협주적 음형》(Konzertante Figuren)입니다.
윤이상 《협주적 음형》은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의 탁월한 연주력이 아깝지 않을 만큼 연주하기 까다로운 작품이고, 시중에서 음반을 구할 수 없어서 실연의 가치가 더욱 높으며, 작곡가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준 1966년 작품 《예악》이 발표된 지 약 6년 뒤에 나온 곡으로 윤이상 음악 어법이 더욱 발전된 형태로 나타나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곡이 이번 공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윤이상 곡과 더불어 리게티 실내협주곡, 진은숙 이중협주곡, 그리고 지휘자이자 작곡가 마티아스 핀처의 2011년 작품인 《마레》(Mar'eh)가 연주됩니다. 모두 본격 현대음악이라 편하게 들을 수는 없을 텐데요, 그러나 편견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면 어렵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소리 그 자체로 빚어내는 질감과 형상을 있는 그대로 들으면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통영국제음악당에서는 일류 연주자일수록 어린 학생들을 위한 '스쿨콘서트' 일정을 추가로 잡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 또한 스쿨콘서트에 출연하고 싶다고 제안해 왔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스쿨콘서트에 현대음악이 괜찮을지 고민하셨는데, 그때 제가 드린 말씀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으뜸가는 악단이 연주하는 현대음악을 아이들이 아무 편견 없이 듣게 하는 일이야말로 뜻깊을 거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