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3일 일요일

바그너 4문 4답

고려대학교 학보사에서 바그너 관련해 이메일로 질문해 왔는데, 쓰다 보니 내용이 길어져서 여기에도 올립니다.

1. 다른 음악가들에 비해 바그너가 왜 자신의 음악에 철학을 많이 적용시켰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런 쪽으로는 잘 모릅니다만, 한 가지 짐작 가는 게 있습니다. 19세기 작곡가들에게 베토벤의 유산을 계승하는 문제는 무엇보다 심각한 고민거리였습니다. 베토벤은 고전주의를 완성하고 낭만주의 시대를 열어젖힌 사람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베토벤이 남긴 음악 유산, 특히 모티프 변형 기법이 낭만주의 시대정신과 안 맞는 데가 있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작곡가들이 저마다 별별 '꼼수'를 다 썼는데, 작곡 기법을 설명하자면 배보다 배꼽이 커지므로 생략하겠습니다.

바그너는 베토벤의 '정신적 유산'을 계승하고자 한 사람이었습니다. '베토벤 이후 교향곡은 죽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지요. 작곡 기법 측면에서 보자면, 바그너는 리스트의 모티프 변형 기법을 빌어 옴으로써 베토벤의 '형식적' 유산을 계승하는 문제를 회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꼼수' 쓰기를 거부하고 베토벤의 기법을 극한까지 발전시켜 버린 브람스와는 그래서 베토벤의 계승자라는 정통성을 놓고 대립했습니다. 이것이 음악계의 파벌 싸움으로 발전한 얘기는 유명하지요. 이와 관련한 주요 '떡밥'들은 오늘날까지 때때로 재탕 될 정도입니다.

바그너가 베토벤의 '정신적 유산'이라며 내세웠던 것은 '도이치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괴테와 실러의 문학, 게르만 신화, 그리고 독일 철학 등으로 대표될 수 있겠고요. 그러니까 바그너의 이런 경향은 민족주의적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특이한 것은 칸트 같은 지난 시대의 거장보다 동시대 철학자를 많이 참고했다는 점입니다. 니체와 형님 동생 사이였다가 나중에 원수가 된 일이나, 《트리스탄과 이졸데》 작곡 전후로 쇼펜하우어 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일은 유명하지요. 바그너는 당대 사상의 유행을 열심히 좇았던 사람입니다. 바그너가 히틀러와 동일시되는 요즘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바그너는 푸르동과 바쿠닌 등 초기 사회주의자들과도 어울렸습니다. 말년에는 불교에도 관심을 가졌고요.

2. 바그너의 철학적 메시지가 대체로 어떤 방식으로 음악에 적용되었습니까?

바그너는 쇼펜하우어 등의 사상을 자의적으로 받아들였는데, 그 핵심은 변용(Verklärung; Transfiguration)으로 요약할 만합니다. 예전에 썼던 글을 재활용하자면, "쇼펜하우어가 말한 '변용'이란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과 비슷한 개념이고, 따라서 죽음과 변용은 동의어에 가깝다. 그런데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와 달리 "지고한 사랑의 쾌락"(höchste Liebeslust)으로 그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명백히 성애를 가리키며, 따라서 바그너에게 죽음과 변용과 섹스는 동의어가 된다."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성애 장면을 음악으로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 바 있고, "지고한 사랑의 쾌락"(höchste Liebeslust)이 변용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음악으로 나타내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고: http://wagnerianwk.blogspot.kr/2011/05/blog-post_09.html

작곡 기법과 관련해서는, 이른바 '트리스탄 화음'과 '무한선율'이라는 용어로 대표되는 기법을 개발해서 음악이 몽환적으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들게끔 했습니다. 그렇게 둥둥 떠다니다가 긴 호흡으로 조금씩 '물결'이 거칠어지면서 "파도치는 물결 속에"(In dem wogenden Schwall) 빠져들어 마침내 "지고한 사랑의 쾌락"(höchste Liebeslust), 즉 '변용'에 이르도록 했고요.

《파르지팔》에서는 '깨달음'과 그 이후로 좀 더 무게가 실리는데, 핵심적인 작곡 기법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긴 호흡으로 부풀려가는 기법을 이번에는 좀 더 명상적으로 썼다는 차이가 있겠고요.

3. 바그너의 민족주의적 성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니까?

다음 링크에서 '바그너 색깔론' 항목으로 대신하겠습니다: http://wagnerianwk.blogspot.kr/2012/05/wagnerian.html

4. 바그너의 라이벌이라고도 불려지는 베르디 역시 탄생 200주년인데 베르디의 음악에 비해서 바그너의 그것이 가지는 음악적 특징은 대표적으로 어떤 점이 있을까요?

베르디가 듣기 좋은 아리아를 중심으로 음악을 썼다면, 바그너는 목소리를 그냥 악기처럼 썼습니다. 아리아를 앞세우는 음악은 '총체예술'(Gesamtkunstwerk)이라는 예술적 이상과 맞지 않았지요. 바그너 작품에서 가수들의 가장 큰 역할은 가사 전달이고, 음악적으로 중요한 역할은 주로 오케스트라가 맡습니다. 이때 오케스트라는 이른바 '라이트모티프' 기법으로 그리스 비극의 합창과 유사한 역할을 하지요.

예전에 쓴 글을 재활용하자면, "오페라와 총체예술 모두 그리스 비극을 이상향으로 삼아 생겨났지만, 바그너는 총체예술이야말로 이상향에 가까이 간 예술이라고 주장했다. 음악학자 카를 달하우스(Karl Dahlhaus) 말을 빌자면 오페라는 "의상을 갖춘 연주회"다. 그러나 총체예술은 여러 예술 장르가 상호작용하면서 극(drama)을 중심으로 하나로 합쳐진 새로운 예술 장르이다. 바그너는 예술 장르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놓으면 표현력이 쇠퇴하며, 총체예술로 합쳐져야만 참된 완성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바그너가 성공하면서 베르디도 바그너의 기법을 일부 수용했습니다. 베르디 후기 작품을 들어 보면, 이를테면 주선율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가수가 대선율을 맡는 식일 때도 잦습니다. 라이트모티프 기법과 유사한,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라이트모티프라 하기 어려운 기법을 활용하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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