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에 연재중인 글입니다.
원문: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674219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도입부에서 박자 젓기에 관해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따따따 따안―' 할 때 긴 음에는 늘임표(fermata)가 있습니다. 그 음을 적당히 늘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얼마만큼 늘여야 할까요? 말 그대로 '적당히' 감으로 늘일 수도 있겠고, 뒤에 비슷한 음형이 다시 나오는 곳을 근거로 한 마디를 세 마디로 늘일 수도 있어요. 음반을 들어 보면 늘임표를 아예 무시한 연주도 제법 있더라고요. 이쯤 되면 단순한(?) 박자 젓기가 아니라 본격적인 '해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비슷한 음형이 곧바로 또 나오니까,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예비박 문제를 또 만납니다. 지휘자는 이 문제를 다 해결해 줘야 해요.
지휘자가 손동작으로 묘기를 부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오른손으로 박자를 저으면서 왼손 바닥을 펼친 상태에서 재빨리 떨어 보세요. 양손이 따로 움직여야 하는데, 그게 되나요? 지휘자는 그런 동작도 자연스럽게 해야 합니다. 연주회장에서 "바이올린만 크레셴도!"(점점 세게!) 하고 외칠 수는 없잖아요?
작품에 따라서는 악기마다 박자와 템포, 셈여림이 제각각이기도 합니다. 지휘자는 이럴 때에도 악기마다 알맞은 예비박을 따로 줘야 해요. 한 번은 연주회장에서 현대음악을 듣는데, 목관악기 하나하나가 불규칙하게 마구 튀어나와요. 지휘자는 그 대목에서 아예 박자 젓기를 멈추고 악기마다 일일이 예비박을 주더라고요. 보통 사람의 박자 감각으로는 어림도 없는 묘기였지요!
오페라를 지휘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가수 하나하나를 신경 써야 하는데다가, 가수들이 노래만 하는 게 아니라 연기를 곁들이기 때문에 돌발상황이 일상적으로 일어납니다. 이럴 때마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에 알맞게 예비박을 바꿔 줘야 하지요. 워낙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사고 수습'이라 하기도 뭣해요. 오페라 지휘 경험이 없는 지휘자는 이런 일을 잘 못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