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13일 수요일

연주회, 터무니없는 표 값에 대하여

▶ 너무 비싸다 vs 너무 싸다

연주회 표 값이 터무니없다, 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터무니없이 싸다는 뜻일까요? 대부분 비싸다는 뜻으로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뉴스를 조금만 검색해 봐도 외국 어느 연주자 또는 단체가 내한했을 때 표 값이 비싸서 논란이 되었다는 얘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꾸로 터무니없이 싸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더군요. 이런 주장도 나름대로 근거가 있으니 이참에 좀 따져 볼까 합니다.

먼저, 글 쓰신 분이 "시비에 휘 말리기 싫어서" 며칠 뒤에 글을 지우겠다고 하셨으니 글 출처에 대해서는 조금 에둘러 어떤 클래식 음악 사이트에 댓글로 쓴 글이라고만 쓰겠습니다. 이분은 한국 음악계에서 제법 이름 높으신 분이며 오스트리아에서 음악학을 전공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본디 그 글은 서울시향이 DG와 계약한 일과 관련해 문제 제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주요 논점에 대해 반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떤 대목은 저 또한 동의하기도 하고, 어떤 대목은 반박할 여지도 있지만, 서울시향이 DG와 계약한 사건을 두고 조금 시각을 달리해 얼마든지 비판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나가듯이 한 이런 말씀 때문에 저는 너무나 마음이 불편합니다. 음악계에서 이름 높으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시향의 예당 시리즈 (유명 연주자 출연) 최저석이 아직도 1 만원이라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입장료로 예당 하루 대관료나 빠지겠습니까?

가장 싼 좌석만을 근거로 표 값이 터무니없이 싸다고 주장하는 일은 가장 비싼 좌석만을 근거로 표 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주장하는 일과 거울 쌍처럼 닮았습니다.

옛날에는 '거지'라고 부르다가 요즘은 '노숙자'라 부르는 사람이 2010년 기준으로 300만 명에 이르는 어떤 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는 너무나 가난한 나라임이 틀림없으므로 유엔에서 구호물자라도 보내 줘야 할까요? 이 나라 이름은 미합중국(USA)입니다.

이렇게 한쪽만 보고 결론을 내리면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질 위험이 큽니다. 당연한 얘기인데도 저분뿐 아니라 국내 대다수 언론이 한쪽만으로 선정적인 결론을 내고 맙니다.

▶ 진실은 무엇인가?

그러면 진실은 무엇일까요? 기획사나 공연 단체 관계자가 아니라면 정확한 통계 자료를 얻기는 어렵겠지요. 더군다나 저는 기자도 아닙니다. 그러나 박종호 풍월당 대표가 쓴 아랫글을 보면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훌륭한 글이니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터무니없이 비싼 한국 티켓 - 원인은 무엇인가?

몇몇 기획사가 연주회장 좌석 가운데 태반을 최고등급으로 분류하는 식으로 꼼수를 부리는 일은 또 다른 얘기입니다. 어떤 때는 교향곡 연주회인데 합창석과 3층에까지 S석을 배정하기도 하던데요.

유럽 연주회 표 가운데 가장 싼 것이 얼마인지도 따져볼 일입니다. 이를테면, 제가 알기로 빈 슈타츠오퍼 입석 표가 3유로 안팎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3유로면 오늘자 환율로 5천 원도 안 되는군요. (우리나라에서 입석 표를 파는 일이 거의 없는 것도 여러 가지가 얽힌 문제이지만, 여기서는 더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또 황지원 문화공장 대표는 트위터(@pucciniholic)로 이런 말씀을 남긴 일이 있습니다.

요즘 저소득층 문화여가비 지원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독일 베를린 주정부의 경우 Classic Card라는 것을 운영하여 이를 소지한 학생의 경우 당일 빈자리 좌석을 등급에 관계없이 우리돈 1만원 정도만 내면 앉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4:29 PM Aug 23rd, 2010 via web

환율, 경제 규모 차이, 연주회장 음향 수준 차이, 악단 및 협연자 역량 차이 등을 더 헤아려 봅시다. 서울시향 연주회 표 가운데 가장 싼 것이 1만 원이라면 차라리 비싸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요?

▶ 공연 단체 수익은 입장료뿐인가? 내가 낸 세금은?

우리나라 공연 단체는 공연 입장료로는 이윤을 내기 어렵다고 합니다. 정확한 통계 자료를 본 일은 없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들 아는 얘기죠. 공연은 하면 할수록 적자를 봅니다.

대중음악도 비슷한 듯합니다.

김장훈, 콘서트 전석 매진에도 3억 적자…왜?

표 값을 올리면 된다고요? 그 표를 누가 사지요? 박종호 님이 쓰신 글 다시 한 번 읽어 보세요.

이렇게 적자가 나면, 대중음악가는 이른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서 음악과 관련 없는 것으로 인기를 얻은 다음 광고를 찍어 돈을 벌거나 하지요. 인기가 떨어진 사람은 이른바 '밤 업소'에서 일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무 프로그램에나 나가기에는 자존심 상해하는 가수도 〈나는 가수다〉라는 TV 프로그램에는 나오는 모양이던데요.

클래식 음악가들은 어떻게 할까요? 보통 정부 지원금을 받습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도 정부에서 지원금을 줄이겠다니까 죽는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우리와 크게 다르지는 않은 듯합니다. (그래도 우리보다는 사정이 나아 보이더군요.)

▶ 세금을 올릴까? 소득공제법을 바꿀까? 표 값을 올릴까?

그러면 세금을 올릴까요?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실 분들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부자들한테만 세금을 더 걷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빨갱이'라는 소리가 들려올 듯하군요.

미국에서는 예술 단체에 기부금을 내면 소득 공제를 받을 수 있게끔 법으로 보장한다고 합니다. 유럽에서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국민 복지 수준이 높을수록 세금도 많이 낸다고 하니 예술기부금 세액공제 혜택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술기부금 세액공제와 관련해 제가 옛날에 트위터로 떠들었던 내용도 참고하세요.

예술기부금 세액공제 법안, 왜 통과 안 되나

법과 제도를 바꾸는 일을 빼고 나면, 가장 만만한 해결책은 역시 표 값을 올리는 것일 듯합니다. 그러나 싼 자리를 더 비싸게 받기보다는 비싼 자리를 더 비싸게 받으면 어떨까요? 아예 가장 좋은 자리를 20석 이내로 따로 등급을 배정해 값을 이를테면 100만 원 이상으로 매기면 어떨까요? 어차피 기업 등에 입도선매로 넘어갈 자리,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팔릴 자리 아닙니까?

▶ 결론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습니다.

  1. 비싼 자리는 더 비싸게 받아도 됩니다. 그래야 싼 자리를 더 싸게 해달라고 관객이 요구할 수 있습니다.
  2. 언론이건 관객이건 이것을 놓고 욕하지 맙시다.
  3. 그 대신에 싼 자리는 더 싸게 해주세요.
  4. 좌석 등급 배정은 관객이 받아들일 만하게 해주세요. 3층을 S석으로 매기거나 하시면 곤란합니다.
  5. 예술기부금 세액공제 법안 좀 통과시켜 봅시다.

※ 나중에 붙임. 예술기부금 세액공제에 관한 제 생각은 뉴욕시티오페라 파산을 계기로 바뀌었습니다. 참고:

http://wagnerianwk.blogspot.kr/2013/11/2013-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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