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한국은 연주나 작곡에 비하면 평론은 뒤떨어져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연주나 작곡에 비해서 평론이 결코 매력적인,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평생 쏟아부을 만한 직업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많은 음악이론 전공자들이 평론을 이어가지 않고, 강의쪽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그런 현실에 대한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평론은 배고픈 직업이기 이전에 한국에서는 그 가치를 발견하기 어려운, 허무한 직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문학분야에서는 작가론이 성숙한 것에 반해서, 양악평론에서는 연주자에 대한 변변한 작가론적인 글이 전무한 것만을 보아도 이러한 현상에 대해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작업은 음악가의 음악 자체와 그의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저술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한 작업을 통해 우리들은 연주자의 음악세계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김동준., "구조적 모순 속에 선 평론가들." 문예연감 2002년호.
http://www.arko.or.kr/yearbook/2002/music/4-05.html
그러면, 훌륭한 평론은 어떤 평론인가? 김원철은 아래 글을 주춧돌로 삼는다.
Kerman, Joseph. "How We Got Into Analysis, and How to Get Out." Critical Inquiry VII (1980):311-33.
Kerman은 분석과 비평 개념 구분을 비판하면서 분석은 본디 과학이 아닌 이데올로기라 했다.
또 Kerman은 음악 분석은 비평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원철은 Kerman이 한 말을 뒤집기를 좋아한다.
분석이 비평적이어야 한다면, 비평은 분석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Kerman이 엉터리 비평을 겨냥해 퍼부은 말을 곱씹을 일이다.
"음악 비평은 미학적 물음에 구걸하기, 설익은 말잔치, 스냅샷 판단 따위를 밑천으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