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28일 화요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9번 /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 슈트라우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 휴 울프 / 서울시향

2011-06-03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 휘 : 휴 울프
바이올린 :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프로그램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9번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슈트라우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을 15곡 남겼다. 그러나 9번 교향곡을 들어보면 쇼스타코비치가 '9번의 저주'를 의식했음을 역설적으로 알 수 있다. 베토벤 이래 교향곡 9번이라 하면 작곡가가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운 진지한 작품, 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작품 등으로 여겨지곤 했다. 그런데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9번은 숫자가 주는 상징성과는 달리 유머로 가득하다. 웃음으로 저주를 물리치고자 했다는 뜻이다. 번스타인은 '9번'이라는 숫자 자체가 이 작품에서는 유머라고도 했다.

분위기가 가벼워서인지, 이 작품은 지휘자가 개성을 드러낼 만한 대목이 좀처럼 없다. 음반을 들어 봐도 비슷비슷한데, 지휘자 휴 울프는 그래도 나름대로 자기 색깔을 넣고자 노력하는 듯했다. 2악장 템포를 악보에서 지시한 ♩= 208보다 두 배나 느리게 잡은 대목은 그다지 특이하지 않다. 그런데 마디를 잘게 나눠 박자를 저어준 대목은 참 인상 깊었다. 템포가 이처럼 느리면 리듬이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고 이른바 '만득이 현상'이 일어나기 쉽다. 이 문제를 가장 손쉽게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휴 울프처럼 해주는 것이지만, 모양새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더 좋은 앙상블을 이끌어 내고자 지휘자가 그만큼 노력했다는 뜻이니 칭찬해 마땅하다.

휴 울프는 단원들에게 맡겨도 될 만한 독주 악구까지 지휘봉으로 모두 통제하는 듯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4악장에서 5악장으로 넘어갈 때 템포 변화였다. 악보에서 지시한 템포는 4악장 ♪ = 84, 5악장 도입부 ♩= 100이다. 4악장에서 5악장으로 곧바로 넘어가면서 바순 독주가 갑자기 템포를 바꾸고 리듬도 빨라진다. 점잖은 유머다. 그러나 휴 울프는 이 대목을 좀 더 매끄럽게 다스리고 싶었나 보다. 4악장에서 5악장으로 넘어가면서 템포 변화를 거의 주지 않았고, 주제 선율이 두 번째로 되풀이될 때에 아첼레란도를 주었다. 현악기가 주제 선율을 받을 때에는 악보에서 지시한 ♩= 100보다 좀 더 빠른 ♩= 120쯤으로 달렸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9번만큼 멋진 바순 독주가 있는 관현악곡은 드물다. 바순은 다른 악기와 섞이면 존재감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바순은 독주 악기라기보다는 다른 악기와 섞어서 음색에 변화를 주는 악기이며, 이런 바순에 독주를 맡기려면 다른 악기를 조심해서 써야 한다. 오케스트라 바순 주자에게는 억울한 일이다. 그런데 이날 오랜만에 곽정선 수석이 멋진 솜씨를 뽐냈다. 곽정선은 얼마 전까지 직책이 수석대행이었지만, 이번에 시향 홈페이지에 가 보니 수석으로 바뀌었다. 연주가 끝나고 지휘자가 곽정선을 홀로 일으켜 세운 일만 세 차례나 되었다.

또 지금은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수석이 된 전임 트럼펫 수석 알렉상드르 바티가 오랜만에 객원으로 솜씨를 뽐냈다. 트롬본 수석 노릇을 한 객원 연주자도 훌륭했는데, 누군가 싶어서 알아보니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앙투안 가네(Antoine Ganaye)라고 한다. 2악장에서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과 함께 멋진 연주를 들려준 못 보던 클라리넷 연주자가 있어서 시향 홈페이지에 가 보니 이름이 정은원이다. 3악장에서 피콜로를 연주한 장선아도 훌륭했다.

슈트라우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에서는 E♭ 클라리넷을 연주한 임상우 부수석이 돋보였다. 본디 악보에는 D조 클라리넷으로 연주하라고 나오지만, 이 악기는 요즘 거의 사라진 탓에 E♭ 클라리넷으로 이조해 연주하는 일이 보통이다. 지난해 3월 스테판 애즈버리 지휘로 같은 곡을 연주했을 때에도 임상우가 E♭ 클라리넷을 연주했다. 이날도 그때처럼 곧고 날카롭고 빈틈없는 소리가 멋졌다.

지난해 연주와 견주자면 이날 앙상블이 좀 더 깔끔했지 싶다. 그날 몇몇 연주자들이 실수했던 대목이 이번에는 모두 말끔하기도 했다. 다만, 매끄럽고 균형 잡힌 소리 때문인지 음향 효과를 과감하게 살리는 맛은 조금 모자랐다. 템포 변화도 애즈버리와 견주면 평면적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녹음한 협주곡 음반을 들어 보면, 바이올린 소리가 작아서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오지 못해 답답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티큘레이션에서도 절제가 묻어난다. 그런데 이날 브람스 협주곡을 들어보니 음반과는 달리 남들보다 소리가 아주 조금 작을 뿐이었다. 이날 연주는 모든 면에서 이성과 감성이 브람스답게 조화를 이룬 명연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악기를 온몸으로 연주하는데 소리가 저렇게밖에 안 난다고? 현대 바이올린을 연주한다더니 그 때문일까?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과연, 소리가 작은 악기인데 테츨라프라서 티가 덜 나는 것이란다. 현 네 줄에서 뽑아내는 음색이 테츨라프만큼 고른 연주자도 없는 듯한데, 이 또한 악기 때문일까, 아니면 연주법에 무슨 비밀이 있을까? 테츨라프가 쓰는 그라이너 바이올린이 모델로 삼았다는 과르네리 바이올린을 테츨라프가 연주하면 어떨지 궁금하다. 또는, 옛날에 썼다는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으로 브람스 협주곡을 연주하면 어떨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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