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프렌즈』라는 초등학생 대상 학습 잡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출판사측의 질의서에 답하는 형식인데, 실제 출간본에서는 문답 형식이 아니라 따로 편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글 쓰려니 초등학생한테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는 기분이 되더라고요. -_-;;
1. 윤이상 선생님께서 감옥에서 만드셨다는 사신도에 관한 <영상> 작품이 궁금해요.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 사신도를 표현할 때 각각 어떤 악기로 표현했는지, 이곡에 쓰인 윤이상 선생님이 개발하셨다는 '주요음'은 어떤 것인지를 위주로 설명 부탁드려요.
《영상》(Images)은 윤이상 작곡가가 강서고분벽화 중 사신도를 보고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입니다. 윤이상은 이 벽화를 보려고 평양까지 갔고, 그 일로 그만 간첩 혐의를 받아 남한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지요. 그리고 감옥에서 이 곡을 썼습니다. 작곡가가 회상하기를, 고구려 무덤을 지키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는 어둠 속에서 강렬한 색채로 빛났고, 넷이면서 동시에 하나로 어우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영상》은 플루트, 오보에, 바이올린, 첼로가 하나이자 넷으로 어우러지면서 다채로운 빛깔로 마치 실뜨기를 하듯 소리를 빚어내는 것이 특징인 작품입니다.
중심음 기법이란?
(※ 편집자에게: '중심음'은 독일어 'Hauptton'을 번역한 말이며 '주요음'이라고도 합니다. '주요음'이라는 번역어는 학계에서 이른바 '짬밥'(…)이 좀 높으신 모 학자께서 지지하신 번역어라고 합니다. 그러나 윤이상 전문가에 가까운 분들은 '중심음'을 좀 더 지지하는 듯합니다.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원어의 의미를 떠나 윤이상 작품세계에 더 어울리는 용어는 '중심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양음악에서는 음과 음이 모여 이루는 관계가 중요하고, 음을 하나씩 따지면 그냥 고정되어 있지요. 그러나 한국 전통음악에서 음은 살아서 움직입니다. 윤이상 선생은 이 차이를 펜글씨와 붓글씨의 차이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윤이상은 음을 고정된 채로 두지 않고 트릴, 장식음, 글리산도 등을 덧붙여 서양음악 속에서도 살아 움직이도록 하는 작곡 기법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중심음 기법'이라고 합니다.
살아있는 음이 모이면 살아있는 화음이 되지요. 이것을 '중심음향'이라고 합니다. 음을 쌓아 '덩어리'를 만들어 전통적인 화음 개념을 넓힌 것이 당시 최신 작곡 기법이었고, 윤이상은 이것을 참고해 한국 전통음악의 음향을 서양 악기로 표현할 수 있게끔 '중심음향' 기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덩어리' 기법이 한계를 만났을 때, 윤이상이 정중동(靜中動) 원리로 살아 움직이는 화음을 대안으로 제시했지요. 이로써 윤이상 작곡가는 서양음악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기고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습니다.
2. 윤이상 선생님께서는 오늘날 세계 음악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며 어떤 위치인가요?
윤이상 작곡가는 축구에 비유하자면 차범근 선수와 비슷합니다. 한국이 서양음악을 들여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독자적인 작곡 기법으로 서양에서 명성을 얻었고, "동양의 사상과 음악 기법을 서양음악 어법과 결합해 완벽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당대 유명 작곡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20세기 서양음악사를 만들어간 작곡가로 한국보다 유럽에서 더욱 유명합니다.
3. 윤이상 선생님처럼 훌륭한 음악가가 되려는 리딩프렌즈 독자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려요.
온고지신(溫故知新). 윤이상 작곡가는 이 원칙으로 세계적인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음악가로서 '어떤 온고지신'이 필요할지 각자 고민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