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행진곡, 휴일만 되면 결혼식장에서 울려 퍼지는 '바로 그 곡'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 곡의 작곡가가 리하르트 바그너라는 사실까지는 얼핏 들어본 사람도 제법 있을 텐데요, 원래는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 3막 전주곡에 이어서 나오는 합창곡이라는 사실까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합니다. ‹로엔그린› 3막의 결혼식은 성당에서 열리기 때문에 피아노 반주가 아닌 파이프오르간 반주가 나오는 점, 그리고 선율 구성이 살짝 단순화된 '결혼식장 판본'과 원곡이 조금 다르다는 점도 원곡을 들어보시면 알게 될 거예요.
무엇보다 독일어로 된 원곡의 가사 내용을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싶어서 제가 직접 번역한 것을 소개합니다:
믿음에 이끌려 다가가세요,
사랑의 축복이 깃드는 곳으로!
승리의 용기와 사랑의 보답이
하나 된 두 분을 축복합니다.
승리한 젊은이, 앞으로 나오세요!
꽃다운 젊은이, 앞으로 나오세요!
찬란한 축제의 속삭임이 흘러나와
마음의 행복을 그대 받아요!
사랑으로 꾸며진 향기로운 방으로
들어가요 이제 찬란한 곳에 빠지세요.
믿음에 이끌려 이제 가세요,
사랑의 축복이 깃드는 곳으로!
승리의 용기와 순수한 사랑이
하나 된 두 분을 축복합니다.
하느님이 그대에게 복을 내리니
우리도 기쁘게 그대를 축복해요.
사랑의 행복이 그대를 돌보니
오래도록 이날 이때를 기억해요.
믿음으로 보호받아 머무르세요,
사랑의 축복이 깃드는 곳에서!
승리의 용기, 사랑과 행복이
하나 된 두 분을 축복합니다.
승리한 젊은이, 여기에 머물러요!
꽃다운 젊은이, 여기에 머물러요!
찬란한 축제의 속삭임이 흘러나와
마음의 행복을 그대 받아요!
사랑으로 꾸며진 향기로운 방으로
들어가요 이제 찬란한 곳에 빠지세요.
믿음으로 보호받아 머무르세요,
사랑의 축복이 깃드는 곳에서!
승리의 용기, 사랑과 행복이
하나 된 두 분을 축복합니다.
신부 엘자 폰 브라반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신이었던 텔라문트 백작, 정확히는 백작부인의 흉계에 빠져 남동생 살해 누명을 썼던 여인입니다. 중세가 배경이라서 결투를 통해 판결이 나게 되는데, 텔라문트 백작의 강력한 무위에 맞서 대전사(代戰事)로 나설 사람이 없어 곧바로 유죄 판결이 나기 직전, 새하얀 갑옷을 입은 기사 '로엔그린'이 백조가 끄는 뗏목을 타고 나타나 결투에서 이기고 엘자와 결혼한다는 이야기가 오페라 ‹로엔그린›이지요. 위 가사에 나오는 '승리의 용기'라는 표현이 그 얘기입니다. '승리한 젊은이'는 운율을 맞추느라 의역한 것으로 원래 가사는 '선량함의 대전사'(Streiter der Tugend)입니다.
후배 결혼식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식장은 서울 방배동 성당이었고, '결혼행진곡'이 합창 없는 파이프오르간 연주로 나왔습니다.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대단했지요. 그 순간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와, 내가 성당에 다녀야겠다!' 결혼식은 가톨릭 결혼식 미사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신부였던 후배의 아버지가 음악계에서 명망 있는 음대 교수님이어서였는지 총신대학교 성가대가 특별히 섭외됐습니다. 그리고 성가대 테너의 아름다운 레치타티보(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것)가 들려왔을 때 한번 더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는 그냥 대중음악 양식으로 된 찬송가를 파이프오르간으로 연주하더군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톨릭 미사에서 계속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 게 귀찮았습니다. '아, 그냥 다니지 말아야겠다!'
아시는 분은 아시는 조금 불편한 이야기. 오페라 ‹로엔그린›에서 엘자는 결혼 첫날밤에 부부싸움을 '대판' 하게 됩니다. 로엔그린은 본디 성배를 지키는 기사인데, 기사단 규칙에 따라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없었고, 그것을 묻지 않는 조건으로 엘자와 결혼했지만, 백작부인의 흉계에 다시 한번 빠진 엘자가 남편의 정체를 의심하는 마음을 이겨내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되는지는 오페라 ‹로엔그린›을 보세요!
10월이 되면서 결혼하는 커플이 많다나 봅니다. 친구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갑자기 생각나서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