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사람들이 둥글게 앉습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가사를 지어내 노래하고 사이 사이에 함께 후렴구를 부릅니다. 또는 재주 좋은 한두 사람이 새로운 가사로 노래하고 나머지가 후렴구를 부릅니다. 요즘에는 '구구단을 외자'나 '삼육구 삼육구' 같은 놀이가 있고, 옛날에는 '어긔야 어강됴리'나 '쾌지나 칭칭나네'가 있었지요.
14~15세기 서양음악 가운데 이런 후렴구가 있는 정형시가를 롱도(rondeau)라고 불렀습니다. 영어 '라운드'(round)와 말뿌리가 같아요. 둥글다는 뜻이죠. 후렴구가 반복되는 모양이 둥글기도 하고, 또 이런 노래를 하면서 둥글게 돌며 춤추기도 했거든요. 같은 말뿌리에서 론도 형식(rondo form)이 나왔습니다. 론도는 이탈리아 말이지요.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리토르넬로 형식'(ritornello form)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말 '리토르넬로'는 돌아온다 · 받아친다는 뜻으로 영어 리턴(return)과 말뿌리가 같아요. 리토르넬로 형식은 바로크 시대 협주곡을 이루는 핵심 원리였습니다. 리토르넬로 형식이 론도 형식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지만, 증거가 충분하지는 않아요.
바로크 시대 협주곡에서는 보통 독주 악기가 하나 이상이었고, 이것을 콘체르티노(concertino)라 했습니다. 그와 대비되는 관현악을 리피에노(ripieno) 또는 콘체르토 그로소(concerto grosso)라 했는데, 콘체르토 그로소는 훗날 이런 식으로 쓰인 작품을 일컫는 말이 되었지요. 우리말로는 '합주협주곡'이라고 합니다.
리피에노가 주제선율, 즉 '리토르넬로'를 연주하면, 콘체르티노가 새로운 음소재로 '에피소드'를 연주하고, 리피에노가 다시 리토르넬로를 연주하는 패턴을 되풀이합니다. 이런 짜임새를 리토르넬로 형식이라 하지요. 론도 형식과도 비슷하지만, 리토르넬로가 처음과 마지막을 빼면 되풀이될 때마다 조(key)가 바뀐다는 점이 론도와 다릅니다.
그리고 대략 이 시기에 조바꿈에 관한 이론이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음악 이론서에서 흔히 말하는 5도권(circle of fifths) 개념의 원형이 이때 나타났고, 아르칸젤로 코렐리를 비롯한 작곡가들이 이런 원리를 활용한 작품을 내놓았습니다. 이런 흐름이 리토르넬로 형식 및 바로크 협주곡의 형성과 맞물려 돌아갔습니다.
옛날 음악회에서는 독주자가 화려한 기교를 과시할 때마다 관객이 박수를 친다거나 하는 식으로 연주자에게 적극적으로 반응하곤 했습니다. 아니, 클래식 음악 관습이 별나게 바뀌었을 뿐, 대중음악 공연에서는 요즘도 그렇지요. 리토르넬로, 나아가 협주곡의 원리 또한 관객 참여를 헤아린 것이었다고 해요. 그런 점에서 비발디는 리토르넬로 형식을 완성한 작곡가로 평가받습니다.
비발디는 음악가로서 국제적 명성을 얻은 뒤로 자주 여행을 다녔지만, 베네치아에 있던 수도원이자 음악 교육기관인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Ospedale della Pietà)에서 주로 활동했습니다. 비발디가 요즘으로 치면 '음악감독'과 비슷한 직위로 있을 때, 저녁 기도 중에 열린 음악회는 '콘체르토 그로소'를 관객이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행사로 소문이 자자했다네요.
그 대단했던 비발디도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 기억에서 잊히고 말았습니다. 인터넷도 텔레비전도 없던 시절, 파리나 런던에서 활동을 이어가지도 않았으니 어찌 생각하면 당연합니다. 마찬가지로 몇몇 사람만이 이름을 기억하던 바흐가 역사적 필연으로 재발견되고, 바흐가 건반악기 곡으로 편곡한 비발디 '조화의 영감' 때문에 비발디가 재발견되고, 리토르넬로 형식과 바로크 시대 음악이 아직도 재발견되고 있습니다.
이 글이 지면에 실릴 때쯤이면, 바로크 시대 프랑스 작곡가를 발굴하는 일을 핵심 사업으로 하는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 센터가 샤르팡티에라는 '재발굴된 작곡가'의 오라토리오 3편을 통영에서 공연합니다. 그리고 두 주 뒤에는 '비발디의 도시' 베네치아 출신으로 세계적인 스타 바이올리니스트인 줄리아노 카르미뇰라가 TIMF앙상블과 함께 비발디, 바흐, 코렐리의 콘체르토 그로소를 연주합니다.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돌아온' 옛 작곡가들의 음악을 발견해 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