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15일 화요일

2016 ISCM 세계현대음악제, 그리고 주목할 작품들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블랙홀

2016 통영국제음악제 공식 공연 중 '자신에게 맞는 공연'을 찾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지난 시간에 소개해 드렸지요. 이번에는 통영국제음악제와 나란히 열리는 2016 ISCM 세계현대음악제를 소개할까 합니다. ISCM(국제현대음악협회)는 세계 최대 규모이자 가장 역사가 오래된 작곡가 협회로, 1922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발족하여 현재 50여 개 지부로 구성된 국제 네트워크입니다.

ISCM에서 주최하고 해마다 소속회원 지부에서 주관하는 세계현대음악제(World Music Days)는 세계 현대음악의 최신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행사로 작곡가들에게 도전의 장이 되어 왔습니다. 통영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은 국제현대음악협회 명예회원이었고, 1960년 독일 쾰른에서 열린 세계현대음악제에서 윤이상 현악사중주 3번이 세계초연되기도 했지요.

대중적인 곡과 실험적인 곡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통영국제음악제와 달리, ISCM 세계현대음악제는 본격 현대음악이 집중적으로 연주되는 행사인 까닭에 현대음악 애호가가 아닌 사람이 선뜻 찾아오기 쉽지 않을 듯합니다. 그러나 현대음악이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도 열린 마음만 있으면 이해할 수 있을 법한 곡들이 많아요. 제가 직접 귀로 들어본 작품 가운데, 그러니까 사실은 다른 일 하면서 흘려들었던 곡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들을 몇 곡만 소개할게요.

시마쓰 다케히토는 윤이상 선생의 제자였고 후쿠시마에 살고 있습니다. 일본대지진이 후쿠시마를 휩쓸고 간 직후에 'Requiem for Nature'(자연을 위한 진혼곡)을 작곡했지요. 이 곡은 2012년 1월 후쿠시마에서 아마추어 악단이 초연했고, 프로 악단이 연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작곡가가 비극을 잊지 않으려는 뜻을 담은 만큼 이 작품에는 가슴을 울리는 힘이 선율과 화음에 가득합니다.

블랙홀 주변에 펼쳐진 중력장은 빛마저 빠져나오지 못할 만큼 어마어마하다지요. 그래서 블랙홀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중력 때문에 휘어 있는 시공간을 블랙홀 뒤 별빛이 앞으로 타고 넘어와 우리 눈에 보이거나 또는 근처로 빨려 들어가는 가스가 불타는 빛이 근처에서 보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최원석 작곡가는 블랙홀 근처에서 빛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계면을 뜻하는 'Event Horizon'(사건의 지평선)을 제목으로 곡을 썼습니다. 그런데 선율이 묘하게 한국적이에요. 화음은 어찌 들으면 윤이상 곡 느낌이 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음악을 듣노라면 태극(太極)이라는 말이 떠올라요. 블랙홀에서 우주가 생성된다는 이론도 있던데요.

신예준의 'Zoetrope'(조에트로프)는 원통으로 된 구식 애니메이션 장치에서 따온 제목입니다. "처음에는 불명확하던 그림들이 점차 모여 완성된 움직임을 형성"한다네요. 이 곡은 선율만 놓고 보면 미니멀리즘 음악이라 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필립 글래스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그 선율이 잘게 조각나 있고, 그 조각을 여러 악기가 돌아가면서 연주해요. 그래서 선율이 흐르는 동안 음색이 마구 바뀌지요. 이런 기법은 '음색선율'이라 해서 베베른이 개발한 것입니다. 두 가지가 합쳐지니 재미난 일이 일어납니다. 저음이 쿵쿵 울리기 시작하면 아주 흥미진진해져요.

이번 세계현대음악제에서 연주될 곡 가운데 마음에 드는 곡을 한 곡만 꼽으라면, 저는 리하르트 레인보스(Richard Rijnvos)의 'Fuoco e fumo'(불과 연기)를 고르겠습니다. 1996년 베네치아 라페니체 오페라 극장이 화재로 홀라당 타버린 사건을 소재로 했다지만, 음악이 비극을 생생하게 전달하기보다 그냥 추상적인 소재로 다루는 듯합니다. 모든 악기가 마치 타악기처럼 분절된 음을 연주하는데, 그런 음과 리듬이 모여서 '덩어리'(cluster)를 이루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형상'이 타오르는 불과 연기를 닮았습니다. 그 형상이 참 매력적이에요.

그 밖에 미시 마촐리의 아카펠라 곡 'Vesper Sparrow'(저녁 참새)와 이고리 실바의 전자음악 'Frames #87'(87번 프레임) 등 흥미로운 곡이 많습니다. 처음 듣는 순간 매혹되는 곡도 있고, 집중해서 들어야 매력을 알게 되는 곡도 있어요.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실제 연주를 들으면 느낌이 또 다를 듯합니다. 이번 세계현대음악제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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