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단체장 자리가 낙하산인사라. (음악춘추 2월호 시평입니다.)
박근혜 정권 초입부터 예술계에 충격적인 인사사건이 도래했다. 예술의 전당 사장을 상식을 깨고 아무도 모르는 인사를 임명했던 거다. 기자들도 처음 들은 인물이니만큼 이력조자 제대로 기사로 쓸만한 것이 없어서 당황하고 있었고 여러 문화계 인사들에게 의견을 종합했을 때 그 중 한 명이 되물은 “그분이 누구죠” 라는 질문이 제목으로 나간 어처구니 없는 경우도 있었다.
정권이 바뀌거나 지자체장이 교체되었을 때 가장 소리소문 없이 무난하게 교체가 가능한 자리가 예술단체장이다. 자본지향적이고 정권에 약한 예술계의 실태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시기이기도 하다. 누구도 여론의 중심이 되지 않으려 하고 직접적인 언행을 조심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실타래처럼 엮어진 한국 음악계의 인간 관계는 뒤에 불이익을 감당 할 수 있는 일체의 행위를 불허한다.
멀쩡하게 활동하며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성과를 내던 지휘자를 대번에 쫓아내는가 하면 서울시향의 예처럼 예술감독과 시장이 같이 선택한 이상한 대표 인사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높은 분들이 한국 예술계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에 대한 척도다. 그들로서는 예술계는 말 많고 돈 많이 쓰는 애물단지이자 정권 홍보처 정도다. 말 잘 듣고 자신의 치적을 홍보만 잘해주면 예술적 식견이나 사회적 인망은 상관이 없다. 오히려 밑에 두어 어려운 큰 인물 보다는 자기 사람이 훨씬 편하기도 하겠다.
다행히도 지금은 교체가 되었지만 서울 근교의 멀쩡한 교향악단을 학생오케스트라 미만으로 전락시킨 지휘자의 아내는 지자체장과 같은 당의 시위원이었다. 지방의 웬만한 지휘자 자리나 감독자리는 정권이나 실세와 긴밀히 연결되지 않으면 절대로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이 불문율이다.
이번에 인사문제가 일어난 국립오페라단의 경우도 황당하기만 하다. 처음 MB 정권에서 단장이 임명되었을 때 위에서 낙하산이 오던 말던 대부분의 음악인들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겠다며 말을 삼갔었다. 나중에 수많은 문제를 만들었을 때 그제서야 음악계는 적정인사를 운운하며 비판하기에 열을 올렸다. 기회주의의 전형이다. 그래도 그때의 인사는 실제 오페라를 만들어 보기라도 했지만 이번의 경우는 또 그것과 다르지 않은가.
신임 단장이 가진 ‘소프라노’로서의 능력은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니 잣대로서 부적합하다. 또한 소프라노로서의 능력이 오페라 단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필요조건도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 오페라 제작에 어느 정도의 지식과 경험이 있는지, 또한 행정과 사무에 대한 납득할 만한 업적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세계에서 통할 만큼의 명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새로 뽑은 단장이 유럽과 일본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는 문광부의 의견은 도대체 어느 정도를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 생각하는지 기준이 모호하다.
그나마 지금은 처음 임명 전부터 음악계가 거부의 의사를 밝혔었고 임명 후에도 많은 음악인들이 집단거부행동을 보이고 있다. 이전의 사례로 봤을 때 정부가 인사철회를 할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음악인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못 미치는 인사를 거부했다는 첫 사례로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것은 궁극적으로 음악인들의 잘못이다. 제대로 된 실력과 능력위주의 사람을 뽑을 수 있는 과정이 망가졌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거다. 능력있는 이들이 신음하고 고생하며 근근이 버텨나가고 있을 때 집안재산과 혈연, 지연을 등에 업은 이들이 훌쩍 그들의 몫을 빼앗아 간다.
지금이라도 자정 하려는 피나는 노력이 없으면 더 이상의 희망을 바랄 수 없는 급박한 처지에 왔다.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