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렸던 글입니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생각나서 올립니다.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 B♭장조는 작곡된 시기를 따지자면 피아노 협주곡 1번 C장조보다 10년쯤 앞서는 작품입니다. 단지 1번 협주곡이 조금 먼저 출판되었을 뿐이지요. 베토벤이 13살 때 작곡한 미발표 피아노 협주곡까지 치자면 2번 협주곡이 두 번째 협주곡이기는 합니다.
이 곡은 베토벤이 16살에서 18살쯤 되었을 때 작곡했고, 당연하게도 하이든과 모차르트 양식을 흉내 낸 곳이 많지요. 그렇다고 이 작품이 하이든-모차르트의 아류라고 하기에는 작품 속에 번뜩이는 천재성이 너무나 대단합니다. 기존의 협주곡 양식을 거의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서 주제를 발전시키는 솜씨가 이미 후기 양식을 내다보게 할 만큼 높은 완성도를 보이고 있거든요.
1악장은 살짝 변형된 소나타 형식입니다. '발랄하고 활기차게'(Allegro con brio)라는 나타냄말이 붙어 있지요. 소나타 형식에 관해서는 많이들 아시겠지만, 모르시는 분을 위해 간략하게나마 설명할게요.
소나타 형식은 크게 보아 제시부―발전부―재현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시부는 제1 주제, 그와 대비되는 제2 주제, 그리고 경과구 따위로 이루어져 있고, 발전부는 제시부 주제가 자유롭게 '발전'하는 곳입니다. 재현부는 제시부를 그대로 또는 비슷하게 되새기는 곳이고요. 때로는 앞뒤로 서주(intro)와 종결구(coda)가 덧붙을 수도 있습니다. 소나타 형식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라지만, 복잡한 얘기는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베토벤 협주곡 2번 1악장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제1 주제를 제시하고 피아노 독주가 변형된 제1 주제로 이어받는데, 오케스트라가 제시하는 주제가 제법 많이 변주되기 때문에 자칫 헷갈릴 수 있습니다. 얼핏 보면 제1 주제군(thematic group)이라 불러야 할까 싶을 정도이고 제2 주제로 착각할 만한 곳도 있지요. 게다가 피아노 독주로 나오는 제1 주제는 형태가 많이 달라져 있기도 합니다.
▲ 제1 주제 (피아노 독주)
▲ 제2 주제
여기까지 길을 잃지 않고 따라올 수 있으면 나머지는 쉽습니다. 발전부와 재현부를 거쳐 악장이 끝나기 직전에 협연자가 홀로 화려하게 연주하는 대목을 카덴차(cadenza)라고 하지요. 카덴차는 원칙적으로 연주자가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곳이지만, 작곡가가 카덴차까지 작곡하는 일도 있지요. 이 곡에서도 베토벤은 나중에 카덴차를 따로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2악장은 A-B-A 꼴 세도막 형식이고, 가운데 도막이 앞선 도막을 변형한 꼴입니다. 느리게(Adagio)라는 나타냄말이 붙어 있지요. 복잡하게 따질 것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악장입니다.
3악장은 A-B-A-C-A-B-A 꼴 론도 형식입니다. '매우 발랄하게'(Molto allegro)라는 나타냄말이 붙어 있지요. 주제가 변형되면서도 연관성이 깔끔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지 않고 나타냄말 그대로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악장입니다.
▶ 모차르트 교향곡 1번
모차르트 교향곡 1번은 작곡가가 여덟 살 때 쓴 곡입니다. 다섯 살 때 처음으로 작곡했다는 곡이 짤막한 미뉴에트라고 하니까, 3년 만에 '꼬마가 작곡도 하는' 수준을 넘어서 무려 교향곡을 쓰는 눈부신 발전을 보였다고 할 수 있겠지요. 실제로 완성도가 범상치 않습니다.
▲ 모차르트 교향곡 1번 1악장 자필 악보
이 작품은 전형적인 18세기 교향곡 형식을 깔끔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과 견주면 아주 단순하다고도 할 수 있지요. 그러니 굳이 작품 짜임새에 관해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듣다 보면 2악장에서 매우 재미난 곳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 제4악장 푸가토(fugato) 주제인 '도―레―파―미' 음형이지요. 이 음형은 사실 16세기 찬송가에서 따온 것이고, 모차르트가 여러 작품에서 인용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첫 교향곡에서 썼던 음형을 마지막 교향곡에서 푸가토로 화려하게 변형시킨 대목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습니다. (푸가토에 관해서는 뒤에 설명할게요.)
▶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
모차르트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교향곡입니다. 고전주의 시대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짜임새가 복잡해요. 1악장부터 살펴보기에 앞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 해설에서 짧게 설명한 소나타 형식에 관해 되새겨 보세요.
도입부 없이 나오는 웅장한 제1 주제에 곧바로 이어 플루트와 오보에가 여리고 달콤한 선율을 연주합니다. 제2 주제가 아니라 경과구에 해당하는 선율이니 헷갈리지 마세요. 곧바로 처음 주제로 돌아오지요? 소나타 형식의 짜임새를 분석하려면 음 소재, 텍스처, 조성 구조 등을 복합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잘 들어보면 이 경과구 음형이 사실은 제1 주제를 변형시킨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어디서 많이 들어 보셨을 선율이 바로 제2 주제입니다. 이어서 웅장한 경과구가 이어지지요. 그러니까 제1 주제와 제2 주제는 짜임새가 거울쌍입니다.
▲ 제2 주제
▲ 작은 종결구 주제
그런데 또 새로운 선율이 나타납니다. 작은 종결구(codetta)에 해당하는 곳인데, 이 곡에서는 마치 제3 주제가 따로 있는 것처럼 작은 종결구가 중요하게 쓰였습니다. 이어지는 발전부가 바로 이 주제를 화려하게 변형시키면서 시작됩니다. 재현부는 일반적인 고전주의 시대 작품과 달리 제시부가 제법 많이 바뀌어 있습니다. 짜임새를 헷갈릴 만큼은 아니고 기분 좋은 놀라움을 주는 정도입니다.
2악장도 소나타 형식입니다. 교향곡 2악장이 소나타 형식인 게 특이하지요. 그러나 느리고 귀에 쏙 들어오는 선율이 계속 이어지므로 굳이 1악장처럼 어렵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해요. 3악장은 미뉴에트와 트리오 형식, 그러니까 미뉴에트-트리오-미뉴에트로 이어지는 복합 세도막 형식인데, 마찬가지로 그냥 편하게 선율을 따라가셔도 됩니다.
4악장은 변종 소나타 형식이지만, 그보다 푸가토(fugato)로 설명하면 좀 더 간단합니다. 푸가토는 푸가(fugue)와 비슷한 짜임새를 말하는데, 푸가는 쉽게 말하면 '돌림노래'와 비슷합니다. 학교 음악 시간에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로 시작하는 노래를 한 번쯤 돌림노래로 불러본 기억이 있지요?
푸가가 돌림노래와 다른 점은 한 마디로 선율이 몹시 복잡하게 층층이 쌓여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다 같이 / 돌자 / 동네 한 바퀴, 이렇게 선율을 세 조각을 낸 다음, 조각 조각을 쌓고, 비틀고, 꼬리를 물고 흉내 내면서 층층이 쌓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기에 여러 복잡한 규칙을 더해야 푸가가 되지요. 푸가토는 이 규칙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선율을 쌓는 것을 말합니다.
푸가(토)를 제대로 분석하려면 음악 전공자도 머리를 쥐어뜯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감상을 위한 편법을 알려드릴게요. 처음 나오는 주제를 기억한 다음, 그 주제를 '벽돌'처럼 생각하세요. 그 벽돌이 어떻게 쌓이는지 머릿속으로 그려 보세요. 가능하면 저음부터 고음까지 모든 선율을 들으면서 벽돌을 찾아내시면 좋습니다. 벽돌 모양이 자꾸만 바뀌니까 긴장을 놓치면 안 됩니다. 중간에 길을 잃었다면 처음 나왔던 주제를 떠올리세요. 도―레―파―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