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은영전' 떡밥을 보고 생각나서, 옛날에 트위터로 오고 갔던 얘기를 모아 봤습니다. 파편화된 글을 대충 모았고, 원문 링크는 귀찮아서 하나만 걸겠습니다:
https://twitter.com/Worldless/status/497608652808019968
이택광: 장정일이든 진중권이든 파시즘에 대한 문화주의적 비판의 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한계. 이사야 벌린도 지적하듯이 파시즘은 대중보다 더 합리적인 개인의 가능성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동하는 것.
이택광: 한국은 팩스턴의 영향으로 파시즘에 대한 문화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게 대세인 듯. 대표적인 분이 진중권. 그러나 파시즘은 자유주의의 모순에 근거하는 것으로 자본주의 경제의 역동성에 조응하는 정치이론이기도 하다. 근대의 논리를 극단화한 것이라는 의미.
이택광: 파시즘에 대한 문화주의적 태도라 함은 파시즘을 후진적이고 전근대적인 퇴행성으로 간주하는 것. 그러나 파시즘은 자유주의의 무기력을 폭력적인 배제의 논리로 뛰어넘으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혁신적이고 탈근대적인 특징도 보여준다. 사실상 '나쁜' 파시즘은 없다.
김원철: 이택광 샘의 '나쁜' 파시즘 드립은 오해 사기 좋을 듯해서 첨언. 그러니까 『은영전』의 골덴바움 왕조랑 비슷한 얘기. (너, 너무 마니악한가효?)
김원철: 은영전 떡밥 이어서: 양웬리 장군이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신념은 바로 파시스트가 되지 않겠다는 것. 기회가 왔을 때 힘으로 밀어버리자는 유혹이 바로 파시즘. 파시즘이 후진 게 아니라 이겨내는 데 큰 용기가 필요한 것.
@dahlhaus 원철님도 양웬리 처럼 썩은 민주주의라도 지키자 주의 이신지요??
김원철: @지킨다는 표현이 애매하네요. 개혁은 필요하지만, 시일이 오래 걸릴지라도 민주적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죠. 대의민주주의를 초월하는 장외투쟁을 넘어 본격 군사력이 개입되면 그때부터 파시즘으로 변질되는 겁니다.
@dahlhaus 욥 트류니히트 같은 리더가 나라를 멸망직전으로 몰아가도 쿠테타는 안된다 겠지요 ㅜㅜ?
김원철: @바로 그렇습니다.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으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지요. 로엔그람이 아무리 멋질지라도, 양웬리가 로엔그람이 되는 순간 로젠바움 왕조 시즌 2가 될 뿐입니다.
김원철: 『은영전』을 모르시는 분께는 근래에 제작된 미드 《배틀스타 갈락티카》를 추천. 극 중간에 개혁의 명분이 파시즘으로 변질되어 가는 과정이 사실적으로 그려짐. 쿠데타가 그 분수령. 이 작품 엄청 재밌습니다. 보다 보면 숨 넘어감. ^^
이택광: 역시나 내가 '나쁜' 파시즘은 없다고 하니 내가 파시즘을 좋게 본다고 착각하는 이가 있는 듯. 파시즘이 마음씨 좋은 이웃의 모습으로 온다는 건 나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도 이 문제에 대한 지적.
이택광: 파시즘은 특정 개인의 성향이나 기질로 환원해서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경제와 관계 없다는 사실이 파시즘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이다. 파시즘은 전자를 희생해야 후자를 '정상화'할 수 있다고 보는 정치이론이다.
이택광: @자유주의를 무능하다고 비판하는 게 파시즘이죠.
이택광: @막상 파시즘을 현실에서 대면하면 나쁘게 비치는 파시즘은 없다는 말입니다. 지옥으로 향하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는 겁니다. 물론 파시즘의 후과는 민주주의에 치명적이죠.
이택광: 한국은 파시즘으로 근대화를 이룩한 국가라는 걸 간과하면 안 된다고 본다. 물론 그 파시즘은 성공적으로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통해 제어되고 있지만, 자본주의 경제의 특성상 파시즘은 대중 정서의 일부로 항상 내재해 있는 것이다.
생각난 김에, 한윤형 씨가 쓴 『은하영웅전설』 비평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