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원문 링크: http://www.hansa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3246
타악기를 연주하는 친구와 함께 밥을 먹다가 생긴 일입니다. 이 친구가 젓가락으로 빈 밥그릇과 반쯤 비운 국그릇과 유리컵 따위를 두드리는데, 그게 아주 멋진 음악이 되더군요. 나중에는 숟가락 두 개를 엎어 쥐고 손가락으로 튕기고 부딪히면서 이런저런 리듬을 연주해내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흉내를 내 봤더니 왜 '비 내리는 호남선'에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되어버리는지….
전문 타악기 연주자라면 누구나 뛰어난 리듬감을 갖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런 '묘기'를 부리려면 리듬감만으로는 모자라요. 타악기는 리듬 악기일 뿐 아니라 음색 악기이기도 하거든요. 20세기에 와서 선율, 리듬, 화성 못지않게 음색이 중요해 지면서, 작곡가들이 타악기를 비중 있게 사용하거나 현악기와 관악기를 타악기처럼 소리 내게 하기도 했지요.
타악기 연주자는 어떤 악기의 어느 부위를 어느 방향으로, 얼마만 한 세기로 때렸을 때 어떤 음색이 나는지, 그 소리를 다른 악기와 함께 낼 때에는 음색이 어떻게 바뀌는지, 연주 공간에 따라 또 어떻게 달라지는지 따위를 잘 알고 리듬 속에 녹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타악기 콩쿠르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도 소리를 만들어 내는 상상력이 모자라 괴로워하다 끝내 타악기 연주자가 되지 못했다고도 합니다.
타악기는 음악의 역사와 함께한 만큼 참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서양 타악기로는 큰북, 작은북, 심벌즈, 탬버린,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 그리고 이름은 낯설겠지만 '쌕쌕이'라 하면 알 만한 마라카스(Maracas) 등이 있지요. 그러나 관현악곡에 가장 자주 쓰이는 타악기는 팀파니입니다. 또 지난 7일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에 오신 분이라면 인상 깊게 보셨을, 줄에 매달아 놓고 채로 때리면 '구아앙!' 하는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는 징 닮은 악기는 탐탐(Tam-tam)입니다.
실로폰처럼 건반을 채로 두드리는 악기도 타악기로 분류합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곧잘 쓰이는 장난감 실로폰은 사실은 글로켄슈필(Glockenspiel)이에요. (전문가용 건반 타악기는 장난감 크기가 아니라 피아노 건반보다 조금 더 큽니다.) 금속 건반을 두드리는 글로켄슈필과 달리 실로폰은 금속이 아닌 나무 건반이 달렸지요. 실로폰은 아이폰 벨 소리로 널리 알려진 마림바(Marimba)와 구조와 소리가 비슷합니다.
서울 안암동에 있는 ㄱ 대학교에서는 아침마다 비브라폰(Vibraphone)으로 연주하는 교가 선율이 들려오는데, 이게 아주 명물이지요. 마림바와 모양이 비슷하지만 '웅웅웅' 하면서 그윽한 소리를 내는 악기가 비브라폰입니다. 아참, 이 곡을 작곡한 사람이 통영 출신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이에요.
지난 2012년, 타악기 연주자 마틴 그루빙어가 통영국제음악제 레지던스 아티스트로 선정되어 시민문화회관에서 공연했지요. 그때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마틴 그루빙어가 훨씬 거물이 되어 통영을 다시 찾아옵니다. 11월 5일 통영시민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퍼커시브 플래닛》 공연이 있고, 그보다 앞선 11월 1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는 뤼벡 합창 아카데미와 함께 카를 오르프의 대곡 《카르미나 부라나》를 공연합니다.
《카르미나 부라나》는 본디 대편성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위한 작품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합창과 타악기 및 피아노 두 대를 위해 편곡되어 소니(SONY)에서 음반으로 발매된 판본을 연주합니다. 이 작품은 타악기가 막중한 역할을 하는 곡이라 최초 기획단계에서 가장 먼저 합창단과 함께 타악기 연주자를 결정했고, 세계 정상급의 인기를 누리는 스타 연주자 마틴 그루빙어를 섭외하게 되었습니다.
타악기는 중세 이후 서양음악에서 그다지 널리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8세기 중반 터키(오스만 튀르크)가 유럽을 침공하면서 새로운 타악기가 유럽에 전해져 유행했고,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오케스트라 악기로 본격 편입되었지요. 타악기 소리가 사람의 심장을 뛰게 하는 원초적인 힘 때문에 군사적·정치적인 효용이 대단했던 모양이에요. 세계 정상급 타악기 연주자 마틴 그루빙어가 통영 관객의 심장을 어떻게 뛰게 할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