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에 연재중인 글입니다.
원문: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694702
절대음감.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천재임을 드러내고자 곧잘 써먹는 설정이지요. 이를테면 피아노 건반을 대충 주먹으로 쾅! 내려친 다음 소리 난 음을 모두 알아맞히라면? 이걸 어렵지 않게 해내는 사람은 아마도 절대음감을 가졌을 겁니다.
이런 사람은 사실 화음을 눌렀을 때보다 불협화음을 눌렀을 때 소리 난 음 맞히기를 더 쉽게 해요. 화음을 들으면 음들이 서로 어울려 버리기 때문에 마치 색맹/색약 검사할 때 쓰는 '이시하라 팔레트'처럼 헷갈릴 때가 있지만, 불협화음은 음 하나하나가 두드러지거든요.
음높이는 상대적이지요. 그런데 빨간색을 보고 '빨강'이라는 색이름을 떠올리듯이, 어떤 음을 듣고 음이름을 곧바로 떠올릴 수 있는 사람도 있어요. 이런 능력을 절대음감이라고 합니다. 어찌 생각하면 그다지 신기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 물리학적으로 따지자면, 빛과 소리는 주파수가 다를 뿐 전자기에너지라는 점에서는 같거든요.
※ 나중에 붙임: 소리는 전자기 에너지 아니라는군요. 제가 봤던 책에 빛과 소리가 모두 "electro-magnetic energy"라고 쓰여 있었는데, 헛소리임이 밝혀졌습니다. -_-;;
절대음감은 영어로 'absolute pitch'라고 부릅니다. '절대음고'가 학술적으로 더 정확한 말이죠. 인지과학자들은 절대음고가 기억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절대음고가 있는 사람은 음계음을 상대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기준음이 '도'가 아닌 이상 두 음을 듣고 음정(interval) 맞히는 일을 어려워한대요.
음이름이든 색이름이든 '이름'이라는 '언어'와 엮여 있죠. 이를테면 글자의 색깔을 알아맞히는 일을 할 때, '파랑'이라는 글자가 하필 빨간색으로 쓰여 있다면 몹시 헷갈리겠죠? "파랑. 아니, 빨강!" 언어 정보 처리 과정에서 혼선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지요. 절대음감이 있으면 음계음을 들었을 때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를테면 음악을 들으면서 영어 단어를 외거나 노래 가사에 집중하는 일을 어려워합니다. 음이름이 머릿속에 자꾸만 떠올라 버리거든요!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이 음악가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다음 시간에 자세히 알아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