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2일 목요일

프롬프터(prompter)를 아시나요?

『경인일보』에 연재중인 글입니다.
원문: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693278

오페라 또는 연극 공연장에 갔다가 무대 한쪽에 눈에 잘 안 띄는 작은 공간을 발견한 일이 있나요? 앞자리에 앉으면 그곳에서 누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무대에 바위나 기둥 같은 게 있다면 그곳에 사람이 숨어 있을 수도 있어요. 이 사람을 '프롬프터'(prompter)라고 부릅니다.

러시아 배우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는 프롬프터의 고충에 관해 이렇게 말했지요. "프롬프터가 있는 개집을 보면 중세 이단심문을 떠올리게 된다. 극장의 프롬프터는 영원한 고통을 선고받아…"

프롬프터가 숨어 있는 '프롬프터박스'(prompter box)는 스타니슬랍스키가 한 말처럼 '개집'이라 부를 만한 크기예요. 프롬프터는 좁고 덥고 무대 바닥에 가까운 그곳에서 먼지를 마셔 가며 공연과 연습을 포함해 거의 온종일 떠들어야 합니다. 때로는 아예 노래를 할 때도 있어요. 옛날 오페라 실황 녹음을 들어보면 그 소리가 작게 들리기도 합니다.

프롬프터는 가수나 배우가 대사, 선율, 리듬, 동선 따위를 잊어버리지 않게 미리 알려주거나, 또는 문제가 생겼을 때 수습하는 일을 합니다. 말하자면 지휘자가 하는 일을 일부 나눠서 하는 셈이지요. 그래서 작품을 달달 외우다시피 해야 합니다.

중세에는 프롬프터가 무대 위에서 지휘자나 감독 노릇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날과 같은 전문 지휘자가 나타난 때는 19세기입니다.) 16세기에는 무대 밖에서 가수/배우들을 입장시키고 막이 오르내리는 때를 결정하는 일 등을 주로 했다는데, 요즘에는 무대감독이 무대 뒤에서 모니터 화면과 헤드셋을 끼고 하는 일이지요. 그리고 17세기에 오페라가 유행하면서 프롬프터가 '개집'에 숨어 있는 신세가 됐다네요. 그리스-로마 시대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요.

저는 오페라 공연에서 자막 넘기는 일을 해봤는데요, 프롬프터가 따로 없고 자막을 무대 위에서 볼 수 있어서, 가수들이 우리말 자막을 보고 원어 가사를 떠올리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자막 '넘돌이/넘순이'가 프롬프터 대용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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