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일 화요일

2008.09.19. 시벨리우스 렘민캐이넨의 귀향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 데얀 라지치 / 성시연 / 서울시향

2008년 9월 19일(금)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성시연
협연자 : Dejan Lazic, pf

Sibelius, Lemminkainen's Return
Beethoven, Piano Concerto No. 4 in G, Op. 58
Mussorgsky, Pictures at an Exhibition (arr. Ravel)



성시연은 지난 1월 9일에 서울시향을 이끌고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등을 연주한 바 있다. 그러나 화려한 콩쿠르 성적과 보스턴 심포니 부지휘자라는 놀라운 경력에 비해 그때 보여준 연주는 기대에 많이 못 미쳤던 터라 이번에야말로 성시연의 참된 실력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이번에는 연주회장이 세종문화회관이 아닌 예술의 전당이라 더욱 좋았다. 이날 연주를 돌이켜보면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으나 지난 연주회보다 뚜렷이 나아진 모습을 보여 반가웠다. 나이 어린 여자라는 약점은 유럽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클 테니 이만하면 제법 잘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나이 어린 '남자'인 구자범 또한 독일 하노버 국립 오페라 극장 제1 카펠마이스터 자리를 거머쥐고도 지난 2006년 2월 27일 연주회에서는 그만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시벨리우스 <렘민캐이넨의 귀향>을 연주할 때만 해도 도무지 잘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지휘자의 해석을 따지기에 앞서 연주자들이 초견으로 연주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앙상블에 꽉 짜인 맛이 없고 어수선했다. 각 파트 수석 연주자와 타악기 연주자를 뺀 나머지는 다른 사람이 내는 소리에 적당히 묻어가려는 듯했고 지휘자의 지시에 재빨리 반응하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이 신나는 작품을 연주하는데 도무지 신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수준이 낮은 악단일수록 연주회 첫 곡을 잘하는 일이 드문 법이며, 서울시향처럼 제법 수준 높은 악단이라면 지휘자가 단원들을 얼마나 잘 이끌 수 있는지와 단원들이 지휘자를 얼마만큼 대우해주는지를 연주회 첫 곡을 들어보면 웬만큼 알 수 있다. 객원 연주자가 악단을 데리고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뻔하므로 첫 곡 준비에 가장 적은 시간을 들이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서울시향의 첫 곡은 성시연의 약점과 한계를 뚜렷이 보여주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훨씬 나았다. 현 소리부터 알차서 이제야 서울시향 연주를 듣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오케스트라 편성을 크게 잡은 것은 뜻밖이었다. 이런 묵직한 베토벤은 요즘 유행과도 맞지 않아 구식이라는 느낌이 들었을 뿐 아니라 협연자 데얀 라지치의 날렵한 연주와 음색이 어울리지도 못했다. 협연자가 루바토를 과장해서 써댄 탓에 음색뿐 아니라 리듬과 템포가 안 맞을 때도 더러 있었다. 지난 1월 9일 연주회 때에도 슈만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했던 세르히오 티엠포가 별난 루바토를 써서 성시연이 정신없이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번에는 끌려다니는 대신 과감한 템포 변화로 협연자를 마주하며 '콘체르토'다운 한 판 겨루기를 연출했다.

데얀 라지치는 맑고 날렵한 음색에 어찌 들으면 꽤 느끼한 루바토를 어우러지게 한 점이 재미났다. 티엠포와 닮은꼴이라 하겠으나 가볍게 통통 튀어오르던 티엠포에 비해 라지치는 제법 힘 있고 단단한 소리를 냈고 페달도 더 많이 썼으며 루바토는 티엠포보다는 훨씬 얌전했다. 성시연과 협연한 두 사람 모두 연주가 능글맞은 데가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그러나 더욱 재미있게도 성시연은 다소곳하거나 나긋나긋하지 않고 씩씩한 여장부 같았다. 그런데 머리 모양은 귀엽더라.

라지치는 베토벤이 작곡한 카덴차를 쓰지 않고 직접 쓴 카덴차를 연주한 점이 남달랐다. 1악장과 3악장 모두 카덴차 바로 앞에 나온 선율을 되풀이하면서 차츰 주요 음 소재를 활용해 변주하는 솜씨가 매우 훌륭했으며, 베토벤 양식과 라지치 색깔이 모두 살아있는 참신한 카덴차였다.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연주는 썩 훌륭했다. 물론 앙상블이 갑자기 매우 좋아지거나 하지는 않아서 숨을 죽이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은 없었다. 그러나 구석구석 소리를 열심히 다듬어 얼핏 들으면 나무랄 데 없는 깔끔한 연주라 할만했으며 마치 노력파 모범생 같은 느낌이 들었다. 라벨의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다양한 음색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그런지 지난번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목관악기와 타악기가 맛깔스럽게 어우러진 제5곡 '달걀 껍데기 속 병아리의 발레'가 특히 훌륭했고, 타악기 소리가 앞으로 나서며 긴장과 폭발을 이끌어간 제9곡 '닭다리 위 오두막집'도 멋졌다. 제10곡 '키예프의 대문'에서는 아침 햇살이 쏟아지듯 찬란하게 빛나는 금관과 힘차게 두드려대는 타악기가 연주회장을 압도하며 환호로 가득한 박수를 이끌어내었다.

그런가 하면 제7곡 '리모쥬 장터'에서는 악센트를 좀 더 또렷하게 살렸으면 싶었고, 제3곡 '튀를리 공원'이나 제6곡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슈밀레'는 현악기가 좀 더 나은 앙상블을 만들어내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제2곡 '옛 성'에서는 서늘하고 쓸쓸한 느낌이 좀 더 살아났으면 싶었고, 제8곡 '카타콤'은 스산한 화음을 잘 살렸으나 시간이 멈춘 듯한 음향을 좀 더 살리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제1곡 '난쟁이'와 제4곡 '비들로'에서는 타악기가 느슨한 앙상블을 가리며 제법 분위기를 잘 살렸다.

이날 연주회에서는 객석이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휴대전화 소리가 몇 번이나 울렸고, 여기저기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는가 하면 떠드는 사람도 있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주로 고주파 음이라 나이 지긋하신 분들께는 잘 안 들리는 듯하다. 또 요즘에는 이어폰을 끼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서 젊은 사람 가운데서도 노인성 난청이라 할 만한 사람이 제법 되는 것 같다. 이런 분들은 자기도 모르게 주위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서울시향 월간지 <SPO> 페이지 넘기는 소리, 숙제하러 온 학생들이 연주는 안 듣고 열심히 필기하는 소리, 가방 여닫는 소리, 그리고 가장 고약한 비닐봉지 만지는 소리까지 모두 주위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소리다. 휴대전화 소리를 진동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안 들릴 거라는 착각도 매우 곤란하다. 클래식 음악의 진짜 아름다움은 여린 소리에서 나올 때가 잦다. 그 소리를 객석 소음 탓에 놓쳐버린다면 그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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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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