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30일 일요일

2008.06.15. 진은숙의 아르스노바 II - 스티븐 애즈버리 / 빌헴 라추미아

2008년 6월 15일(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지휘자 : Stefan Asbury
협연자 : Wilhem Latchoumia (Pf)

John Cage (1912-1992) Credo in US for piano, 2 percussions, radio and phonograph (1942) ca.12’30
Charles Ives (1874-1954) Set for Theatre Orchestra (1899-1906/1915) 7’30
- In The Cage
- In The Inn
- In The Night
Il-Ryun Chung (*1964) Glut for ensemble (2008) ca.15´
John Cage (1912-1992) , Suite for toy piano (1948) 4’
Henry Cowell (1897-1965), The Banshee for string piano (1925) 2’
Conlon Nancarrow (1912-1997), Prelude for piano (1935) 1’30
Tango? for piano (1983) 3’
John Zorn (*1953), Cat O’Nine Tails for string quartet (1988) 15’30
Igor Stravinsky (1882-1971), Ragtime for 11 instruments (1918) 4’30
George Antheil (1900-1959) Jazz Symphony for solo piano and small orchestra (1925/1955) 7’

※ 13일 연주회는 날짜를 잘못 알아서 놓쳤습니다. 털썩... 출간본을 보니 13일 연주회 리뷰를 다른 사람한테 맡기지 않고 15일 연주회 리뷰만 실었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많은 내용을 짧은 글에 우겨넣느라 고생할 거 없이 더 길게 써도 됐을 텐데 ㅠ.ㅠ



타악기를 하는 친구와 함께 밥을 먹다가 겪은 일이다. 그 친구가 젓가락으로 빈 밥그릇과 반쯤 비운 국그릇과 유리컵 따위를 두드리는데 매우 수준 높은 '타악기 연주'라 새삼 놀랐다. 나중에는 숟가락 두 개를 엎어 쥐고 손가락으로 튕기고 부딪히면서 이런저런 리듬을 연주해내기도 했다. 내가 흉내를 내 봤더니 왜 '비 내리는 호남선'에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되어버리는지….

존 케이지의 <크레도 인 유에스>를 연주하는 서울시향 타악기 연주자들이 통조림 캔 따위를 두드리는 것을 보고 그때 생각이 났다. 소음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그보다 훨씬 앞서 나온 탓에 그다지 파격이랄 것은 없지만 '라디오'를 이용해 존 케이지다운 '해프닝'을 연출한 것은 흥미로웠다. 연주회 해설을 쓴 하바쿡 트라버는 이 곡을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개입했던 사건과 엮어 설명했고 곡 제목이 뜻하는 바를 그로써 알 수 있다. 그러나 서울시향의 연주는 '해프닝'을 더 강조했다. '라디오 선곡'은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빼면 무거운 것이 없었고 '언제든지요 형님'이라는 말이 흘러나올 때에는 객석에 웃음이 번졌다. 그러다 마침내 그것이 나오고 말았다. '텔~미! 텔~미!'

정일련의 <작열 Glut>은 서울시향이 이번에 위촉한 작품이다. 프로그램을 쓴 하바쿡 트라버는 물질이 열을 받았을 때 일어나는 물리 현상을 중심으로 작품을 설명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트라버가 한국 문화를 잘 몰라서 반쪽만 이해한 듯싶다. 작곡가는 굿하듯이 타악기를 두드리는 동안 열이 올라 다른 얼을 받아들인다는 생각을 하면서 곡을 썼다고 한다. 가만히 들어보면 어렸을 때 시골에서 본 굿과 닮은 데가 있다. 그러나 대놓고 굿판을 벌이지는 않는다. 기만적인 근대화를 경험한 한국인에게 진짜 굿은 왠지 좀 구질구질하게 느껴지지만, 정일련이 벌인 '굿판'은 마림바와 실로폰의 맑은 음색과 가멜란(Gamelan) 악기 따위가 어우러져 현대인 입맛에 맞는 '놀이'로 느껴졌다. 휴식 시간에 10대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하더라. "간지 작렬이야!"

존 케이지의 <장난감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은 작품보다 악기가 핵심이었다.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이 나오는 애니메이션 <피너츠>에서 슈로더가 연주하던 바로 그 장난감 피아노가 아닌가! 피아니스트 빌헴 라추미아가 무대 바닥에 주저앉아서 장난감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들이 객석에 넘쳐흘렀다. 그런데 옥에 티가 있다. 왜 장난감 피아노 위에 슈로더가 쓰던 베토벤 흉상이 없단 말인가. 그게 없으니 장난감 피아노가 무게중심을 못 잡고 흔들리지 않는가!

롤플레잉 게임(RPG)을 즐겨 하는 사람이라면 헨리 코웰의 <밴시 Banshee>를 듣고 무릎을 탁 쳤을 것이다. 밴시는 서양 처녀 귀신으로 롤플레잉 게임에서는 물리력이 통하지 않아 마법이나 마법 무기로 공격해야 하는 언데드 몹(Undead Mob)이다. 이것을 알고 나면 클러스터 기법이나 특이한 연주법 같은 것은 관객이 알 필요 없다. 보라, 밴시가 무대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지 않은가. 마법사, 뭐 하고 있나? 어서 공격해!

아이브스의 극장 오케스트라를 위한 <세트>와 존 조른의 <캣 오나인 테일스>는 콜라주 기법을 쓴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존 케이지의 <크레도 인 유에스>도 따지고 보면 마찬가지다. 낸캐로우의 피아노곡이나 스트라빈스키의 <래그타임>과 앤타일의 <재즈 교향곡>은 맥락이 조금씩 다르지만 '재즈'라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재즈라는 음악 장르는 여러 음악이 섞여 만들어졌다. 여러 가지가 뒤섞인다는 것은 매우 미국적인 가치인데,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서 이것을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각각이 대등하게 섞여 하나가 되는 융화(融和)는 한쪽이 다른 쪽에 섞여들어 가는 동화(同化)와는 다르다. 음악학자 윤신향은 윤이상 음악이 동서양 음악을 융화시킨 게 아니라 서양 문화에 동화하는 과정을 내비친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 세계 사이의 진정한 융화는 작곡자의 삶이 음악 어휘를 결정할 때마다 그늘처럼 은폐되는 한국적 정신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그곳에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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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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