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6일 월요일

음악 취향과 아비튀스의 사회학

현택수. "19세기 오페라와 교향곡의 사회학." 낭만음악 제 8권 제4호: 1996년 가을(통권 32호)

현택수. "19세기 오페라와 교향곡의 사회학." 낭만음악 제 8권 제4호: 1996년 가을(통권 32호)


위 글을 읽기 전까지 나는 사회학과 역사학이 전혀 다른 학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곰곰이 따져 보면 둘 사이의 구분은 그다지 명확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내가 역사학과 사회학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던 개념은 그 연구 대상이 과거인가 현재인가에 주된 차이점이 있었던 것 같다는 점은 몹시 당황스럽다. 위 글은 1870년대부터 1900년대 초의 프랑스 파리의 음악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글 제목에서도 ‘사회학’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으며 또한 사회학적 연구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위 글에서 저자가 주로 사용하고 있는 사회학의 방법론은 양적 분석방법이다. 연주회장에서 공연된 작품의 면면을 살피고, 작곡가의 출생년도와 경제 계급, 그들이 속했던 단체, 연 저작료, 그들을 지지했던 비평가와 관객의 특성 등을 비교하여 ‘오페라’와 ‘교향곡’이라는 두 장르의 대립관계(저자는 ‘상징투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원래 부르디외가 사용한 것을 받아들인 것으로 추측된다)를 둘러싼 사회학적 요인에 대해 기술한다. 즉 저자는 두 장르 사이의 ‘상징투쟁’을 ‘한정된 음악시장 내에서 사회 계급적, 교육적, 취향적, 경제적 조건이 다른 음악인들 간의 경쟁과 대립의 관계’로 본다. (pp. 113)

그러나 저자는 질적 분석방법 또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장’ (Champ), ‘아비튀스’ (Habitus) 등 부르디외가 정의한 개념을 빌려 쓰고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즉 저자의 논지는 부르디외의 이론에 매우 잘 부합한다.


장르의 발전과 예술사조의 변화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장르의 미학에 대한 부단한 정당화 작업과 동시에 경쟁과 대립적 위치에 놓인 기존의 장르에 대한 상징적 투쟁을 벌임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상징투쟁을 수행하는 자들은 음악작품을 생산하는 작곡가와 이 작품을 유통의 측면에서 평가하는 비평가들이다. 한정된 음악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음악인들은 서로 자신의 음악이 뛰어난 미학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집단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격돌하게 된다. (pp. 129)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양적 분석방법과 질적 분석방법이 상호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라는 점이다. 즉 ‘상징투쟁’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장르의 발전과 예술사조의 변화’에 대한 가치평가는 양적 분석방법에 의한 객관적 논거로 힘을 얻게 되었다.

한편, 사소한 부분에서 한 가지 수긍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데, 바그너의 음악이 “‘지성’에 호소하는 음악”이며 기존 오페라에 비해 미학적으로 우월하다는 식의 주장이 그것이다. 이 주장만을 놓고 본다면 개인적으로는 대체로 공감하지만, 적어도 “교향곡[오페라] 〈Rienzi〉”를 바그너의 대표작처럼 소개하는 한 이에 대해 문제 삼을 수 있다. (pp. 122) 바그너의 초기작인 이 오페라는 상당 부분을(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대부분을) 요란한 행진곡과 대규모 합창으로 채우고 있는 등 젊은 작곡가의 허영심에 의한 한계를 적나라하게 노출하고 있으며, 또한 히틀러가 바그너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집단최면적 선동기법을 가장 많이 연상시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저자는 바그너의 음악이 기존의 음악과 ‘상징투쟁’하는 과정에서 등장했을 레토릭(rhetoric)을 그대로 인용한 것 같다. 이는 ‘상징투쟁’ 자체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겠으나 독자가 그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도록 좀 더 조심스러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2004년 5월 27일
김원철
http://wagnerian.system-halt.com

글 찾기

글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