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연, 이종희 공역. Kivy, Peter. ≪순수음악의 미학: 순수음악의 경험에 관한 철학적 성찰≫. 제 4장. "헬렌의 방식." 서울: 이론과 실천, 2000.
Meyer, Leonard B. 신도웅 역. ≪음악의 의미와 정서≫ 제 1장. 서울: 예솔, 1991.
미학이라는 녀석은 내가 고등학생 시절에 잠시 관심을 가졌던 주제였지만, 그 뒤로는 그저 지루한 말잔치 정도로 생각해 왔다. 이는 칸트, 헤겔 등의 ‘위대한’ 철학자들이 예술에 대해 말할 때 자기 논리에 빠져 예술 자체에 대한(특히 음악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까닭이다. 이는 단지 시대에 따른 인식의 차이라고만 생각할 수도 없는데, 이는 이를테면 도올 같은 현존하는 ‘위대한’ 철학자에게서도 마찬가지로 편협하고 천박한 음악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위의 저자들의 주장은 신선하게 느껴지며, 특히 Kivy가 상대방을 공격하는 방식은 통쾌하다.
모든 음악은 어떠한 대상을 ‘지시’, ‘재현’ 또는 ‘모사’하며, 그것이 ‘재현’하는 표면적인 대상을 찾을 수 없더라도 ‘물자체’와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으로부터 그 대상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은 어떻게 보면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재현’의 개념을 확장하는 것은 공허하다는 주장 또한 타당하다. 특히 음악이 그 ‘지시’ 대상을 얼마나 잘 ‘재현’했는지가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때 그것은 쓸모없는 것일 수 있다.
음악이 표면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대상을 찾을 수 없을 때에도 여전히 무엇인가를 ‘재현’한다면 그것은 음악 그 자체라는 주장은, 어딘가 꺼림칙한 구석이 있음에도 공허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럴듯하다. 음악에 대한 평가는 뜬 구름 잡는 소리나 하는 사람들 보다는 음악 자체에 대한 전문적 분석이나 비평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낫다.
Kivy가 말하는 ‘자극 모델’이나 Meyer가 예시하는 James-Lange 이론 등의 심리학 이론들은 행동주의 심리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음악의 지시적 의미를 주장하는 경우와는 반대편에 위치한 극단으로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심리학에 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행동주의의 망령을 몰아낼 만한 만족할 만한 근거를 나는 찾지 못했으며, 마찬가지로 ‘자극 모델’에 대한 비판은 근거가 충분치 않다고 느낀다.
2004년 5월 20일
김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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